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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양연 「야설(野雪)」

by 답설재 2013. 5. 1.

이 이야기는 야한 이야기, 굳이 한자로 쓴다면 '野說'이 아니고, '눈 내린 들판' 혹은 '저 들의 눈'이라고 해도 좋을 野雪이므로 '野說'을 찾아오신 분은 '바로' 돌아가시는 것이 낫습니다.

 

 

 

야설(野雪)

 

 

 

교장자격연수를 받을 때였습니다. 1999년 5월, 17일부터 1주일간은 LG인화원에서, 이후 한 달은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원연수원에서 지냈습니다.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여서 불철주야 일에 매달려 지내다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주입식 강의나 들어야 하는 당시의 교원대 연수원에서는 참으로 무료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유를 막론하고 교수나 학자, 교사들의 일방적 강의로 점철되는 연수를 혐오하고 경멸합니다. 만약 교사를 양성해 내는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강의도 그런 식이라면 우리 교육은 요원하다고 단언하겠습니다. 망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딱 1주일이었지만, LG인화원에서의 연수는 활동형, 과제해결형이어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은 장면이 많습니다. 잘난 척할 것 없이 그때 연수생들은 각자 내면에 숨어 있는 자신의 비민주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었고(우선 그걸 인식해야 치유가 가능하겠지요), 소집단별로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고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을 체득(體得)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수생들은 거의 모두 마음 편한 걸 좋아하는 경향이어서 아무래도 LG인화원에서의 참여형, 활동형 연수보다는 교원대 강당에 편안히 앉아 강사 얘기나 들으며 지내는 걸 선호(!)했고, 기업체 연수원에 위탁하여 이루어진 그 활동적인 연수는 연수생들의 의식조사 결과를 반영하여 이듬해에는 당장 폐지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모두를 싫어하면서도) LG인화원에서의 그 짧은 기간에도 연수생들은 매시간 매우 진지하고 열성적이었습니다. 모두들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혈안이었습니다.

 

 

 

 

LG인화원 측에서는 연일 비디오카메라로 연수 장면을 촬영했고, 더러 인터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카메라맨이 내게도 다가왔습니다.

 

나는 교과서 편찬에 참여하는 교원이나 교수, 학자들로부터는 "교육부 편수관"으로 불리기는 했지만, 교육부 일을 한 지 10년이 가깝도록 실제 직급은 '교육연구사'였으므로 언제나 좀 의기소침한 편이었고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날마다 고위직을 상대하며 생활하다 보니까 '그까짓 교장자격연수...' 하며 시큰둥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교육행정가들은 시대와 정권이 바뀌어도 언제나 "혁신!" "혁신!" 하는 재촉과 압력, 격려 같은 느낌을 가지고 생활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고, 더구나 정부중앙청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날 그 인터뷰에서 나도 "20세기가 가고 대망의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우리 교육에도……" 어쩌고 저쩌고 하며 제법 그럴듯한 단어들을 늘어놓았습니다.

 

 

 

 

드디어 5박 6일간의 연수를 마치는 토요일, 오전 일정이 끝나고 수백 명의 연수생들이 강당에 모였습니다. 수료식을 하기 전에 1주일 간 촬영한 장면들을 엮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습니다.

 

우리가 조별로 활동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다 보았고, 가끔 인터뷰 장면도 보았습니다. 그런 인터뷰도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지 모두들 열심이었는데, 그 다큐멘터리가 거의 끝날 때가 되어도 내 얼굴은 나타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좀 의기소침해서 저런 사람들처럼 멋지게 말할 수가 없었지.'

'그것도 그렇지만, 괜히 혁신이니 21세기니 했지. 어울리지도 않아.'

 

나는 이제 그 프로그램의 내용보다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그날 아침나절의 마지막 활동까지 다 보여준 다음, 마침내 내가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내 인터뷰 장면은 하나도 잘리지 않고 그대로 편집되어 있었습니다.

 

 

 

 

주변의 여러 연수생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고, 저쪽에서 "와!" 하는 연수생도 있어서 나는 매우 흥분된 상태였지만 눈은 화면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 인터뷰에 이어 저 한시(漢詩) '야설(野雪)'이 한 줄 한 줄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 바로 나를 위해 편집된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괜히 눈물이 흐를 것 같았고, 그걸 애써 참고 있었습니다.

 

눈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穿雪野中去 (천설야중거)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今朝我行跡 (금조아행적)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여럿 보았습니다. 며칠 전에도 어느 교과서 발행사 중역실에 가서 칠판에 적혀 있는 이 시를 보았습니다.

요즘은 수기(手記)를 한 경우가 드물어 글씨를 좀 보고 있었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하던데... 저는 이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렇기도 하겠지만, 교과서 편집자들인 직원들이 그 방에 들어오면 이 시로써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내가 온다니까 폼나게 하려고 얼른 게시해 놓았던 것일까요?

 

 

 

 

나는 그 연수를 받은 후로 교육부에서나 학교에서나 자주 이 시를 떠올리며 지냈습니다. 흡사 이 시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해서 외로울 때나 힘들 때나 '괜찮다. 나는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왜, 무슨 일이 있어서 이 시를 좋아할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건 그 사람을 무시해서였다기보다는 내가 이 시를 그만큼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나 격언, 좌우명, 책, 영화, 노래…… 같은 걸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 아닌가 싶고, 우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나 후손들에게도 그런 면을 깊이 생각해서 뭔가를 좀 보여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 시는 조선시대 시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성균관대 한문학 전공 안대회 교수는 이 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1

 

조선 정조와 순조 때를 살다 간 시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의 작품이다. 김구(金九) 선생의 애송시로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다. 서산대사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정작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실려 있지도 않다. 이양연의 시집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 있고,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올라 있어 사실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짧은 시에 촌철살인의 시상(詩想)을 멋지게 펼쳐내고, 따뜻한 인간미와 깊은 사유를 잘 담아내는 이양연의 전형적인 시풍(詩風)을 보여준다.

 

어느 날 눈길을 헤치고 들판을 걸어가면서 자신의 행로가 지니는 의미를 반추해 본다. 누가 보지 않아도 똑바로 걷자. 혹시라도 내 행로가 뒤에 올 누군가의 행로를 비틀거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똑바로 살자. 내 인생이 다른 인생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 아마 이런 뜻의 잠언(箴言)이리라. 순백(純白)의 설원(雪原)에 서면 맑은 영혼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나 보다.

 

이양연은 성리학에 정통한 조선 후기 문신으로, 동지중추부사, 호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농민들의 참상을 아파하는 민요시를 많이 지었다고 합니다. 2

 

 

 

 

그럴듯한 사진이 없어 지난겨울 눈 내린 날의 풍경이라도 두엇 붙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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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 2월 19일, 조선일보 A.34면, 「가슴으로 읽는 한시」.
2. 블로그 'LUCKY2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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