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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백석「쓸쓸한길」

by 답설재 2013. 4. 6.

쓸쓸한길

 

 

거적장사하나 山뒤ㅅ녚비탈을올은다

아 ── 딸으는사람도없시 쓸쓸한 쓸쓸한길이다

山가마귀만 울며날고

도적개ㄴ가 개하나 어정어정따러간다

아스라치전이드나 머루전이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흐린날 東風이설렌다

 

 

― 『정본 백석 시집』(백석 지음/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 1판16쇄), 207쪽.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보와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해방 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위의 책 날개에서

 

 

 

* 낱말풀이(이 시집 49)

 

거적장사 시신을 거적으로 대충 말아서 장사葬事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가마귀 까마귀. '까마귀'의 고어인 '가마기'가 방언으로 남아 쓰인 것이다.

아스라치전 '아스라치'는 '산이스랏' '산앵두'의 방언(평북, 함경). '전奠'은 장사 지내기 전에 영좌靈座 앞에 간단하게 술, 과일 등을 차려놓는 예식을 말한다.

아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거적장사가 오르는 산비탈에 산앵두와 머루가 피어 있는 풍경을 장사 직전에 전奠을 차린 것에 비유한 것이다.

수리취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9~10월에 흰색 또는 자주색 꽃이 핀다. 총포에 거미줄 같은 흰 털이 나 있다.

복服 상복喪服, 소복素服, 수리취와 땅버들의 하얀 솜털을 상복에 빗대어서 표현한 말이다.

뚜물 뜨물.

 

 

 

 

 

누군가 죽어 거적에 말려서, 산비탈을 올라갑니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상주가 없습니다.

산까마귀 울며 날고,

개 한 마리가 어정어정 따라갑니다.

술, 과일 대신 산앵두, 머루가 피어 있고,

수리취, 땅버들의 하얀 털이 소복 같습니다.

뜨물 같이 부옇게 흐린 날, 동풍이 이리저리 불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