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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과서의 수준을 높여야 할 사람들

by 답설재 2012. 12. 11.

   <교과서연구> 제70호 권두언

 

 

 

 

 

교과서의 수준을 높여야 할 사람들

 

 

 

 

 

  우리나라에서는 교과서에서 간단한 오류 몇 가지만 발견되어도 당장 야단이 납니다. 우선 언론에서 “오류투성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를 질타합니다.

 

  교과서에 대한 이러한 정서는, 교육을 그만큼 중시하고 교과서의 내용을 ‘금과옥조(金科玉條)’ 혹은 무슨 ‘성전(聖典)’처럼 존중하는 우리 국민들의 교육관(敎育觀)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교과서의 수준이나 가치는 교과서에 담긴 내용, 그 내용을 구성하는 방법, 그 내용을 보여주는 체제 속의 갖가지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단순한 오류쯤은 괜찮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것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질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직접 그 교과서를 만든 입장에서는 그러한 비판이 오히려 좀 억울하기도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류의 경중을 따져 벌금을 매기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처럼 혹독한 비판을 하는 사례를 찾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교과서 내용 검열이 엄격하기로 우리보다 결코 덜하지는 않은 일본만 해도 출판사 책임이지 수십 명의 교과서 조사관이 근무하는 문부과학성의 잘못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관점을 가진 배경에는, ‘교과서’라고 하면 정부에서 만드는 특별한 책이라는 인식도 작용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가령 검인정 교과서는 정부에서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해봐야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정부에서 하는 일이 겨우 이 수준이라니!”하고 개탄한다는 뜻입니다. 기껏해야 “아니, 그럼 교과서를 정부에서 만들지 않으면 누가 만들어?” 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지금 교과서에 관한 일을 직접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교과서의 대부분을 민간이 만들도록 한 조치에 대해 아주 무책임한 조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검정 교과서를 대부분 인정으로 전환해버렸어! 그런 식으로 해서 교육이 제대로 되겠어?”

 

  이런 시각이라면 교과서 제도를 바꿔봐야 별 수 없습니다. “국정교과서가 세상에서 제일”이고, “그 다음이 검정교과서”, 그것도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인정교과서”라는 서열이 있는 게 분명하며, 그런 서열을 매겨놓고 바라보면 우리의 교과서 정책이 아주 혼란스럽게 보일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령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미국(과반수 주) 등 여러 나라에서는 자유발행제를 실시하고 있고, 일본과 독일,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몇몇 나라에서만 검정을 실시하며, 지금은 국정제를 주로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얘기를 해봐야 아예 듣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기야 “우리도 이젠 검정제를 한다”는 어느 나라를 보면 말로만 검정제지 실제로는 엄격한 국정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도쯤은 아무리 바꿔도 이상적인 인정제, 실제적인 자유발행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정부가 강력하게 관여하는 국정제 같은 인정제, 검정제 같은 인정제도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교과서에 관한 한 현장교원들이 높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도 교과서를 만드는 쪽이 언제나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국정교과서라면 당연하다는 듯 정부에서 교사들에게 “이렇게 가르쳐라!” “저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지침을 주게 됩니다. 교사들은 할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지침대로 가르치게 됩니다. 심지어 검정교과서나 인정교과서라 해도 다를 수 없습니다. 교사들은 언제나 수용해야 하는 쪽이지 그들이 무슨 주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게 됩니다. 아무 말 없이 지침을 받아서 그 지침만큼만 성실히 가르치면 ─학생들에게 그 지식을 잘 전달해주면─ 좋은 교사가 되므로 교사의 전문성, 자율성, 창의성이 어디에 필요한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교과서를 만드는 쪽에서는 장차 우리도 특정 교과서가 없는 자유발행제, 자율채택제를 적용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될지 너무나 걱정스럽고 암담한 상황이 그려져서 그런 생각은 아예 하고 싶지도 않게 됩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제도 개선 방안’에 이어 ‘2010 교과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그 방안에 따라 오늘까지 3년째 그 정책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7 교과서 제도 개선안은 국정도서의 검정 전환 확대 및 검정방식 개선, 인정도서 확대, 교과서의 지속적 질 관리 및 외형체제 개선 등이 주요내용이었고, 2010 교과서제도 선진화 방안은 인정도서 확대, 검정제도 개선, 교과서 선정․채택 제도 개선 등이 주요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인정도서 정책은 장차 교사들이 자체 제작한 학습자료나 시중의 일반서적도 인정절차만 거치면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2010.1.12)는 꿈을 부풀게 해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2007 개선안에 이어 계속적으로 자율화, 다양화를 추구하면서 교사들의 자율성, 창의성을 요청하는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 정부에서 바라는 교과서의 개선, 변화,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현장의 수업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교과서만 바뀌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한두 번 바꿔본 것도 아닙니다. 수업은 종전대로 주입식, 지식전달식으로 하면서 교과서를 가령 토론식, 탐구식으로 바꾸자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며, 지식전달식 수업을 하려면 차라리 개념 설명식, 강의식 교과서가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이 수업을 혁신하면서 “우리에게는 이런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주장하는 상황이 전개되어야 우리 교과서의 선진화, 우리 교육의 혁신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과서 선진화 방안의 구상은 우리 교육의 그러한 모습을 그려보고 발표한 것이 분명합니다. 요즘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깊지만, 디지털 교과서를 “종래의 서책형 교과서 내용에 ‘용어사전(학습사전)’, ‘멀티미디어 자료’, ‘평가문항’, ‘보충·심화 학습자료’ 등 풍부한 학습자료와 학습 지원 관리 기능이 부가되고, 교육용 콘텐츠 오픈마켓 등 외부 자료와의 연계가 가능한 학생용 교재”(2011.6.29. 보도자료)로 정의하고 싶다면 그 정의 또한 지식주입식 교육에는 전혀 해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과서 연구와 교과서 정책의 정점에 우선 교사들의 위치를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한국교과서연구재단에서는 이 저널을 계간지(연 4회)로 발간하여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육행정기관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그간 70호를 냈고, 저는 제45호(2005.8월)부터 이 책의 편집기획을 맡아 왔으니까 7년 반 동안 25책을 낸 셈입니다.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은 운영 자금이 부족해서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서책 인쇄는 중단하고, 홈페이지에 탑재만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연간 4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내는 분에게는 별도로 인쇄하여 보내는 방안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전문지의 존립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정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논의 결과는 2013년 3월에 발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