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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이명(耳鳴)은 내 친구

by 답설재 2012. 10. 3.

 

 

 

'이명'을 아십니까?

귀에서 여름 한낮 매미 우는 소리 혹은 기계음, 혹은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영원히(!)" 들리는 현상.

"쐐~쐐~쐐~쐐~쐐~쐐~쐐~쐐~쐐~"

혹은 "찌이잉───────────"

혹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들립니다.

 

나는 이명을 앓고 있습니다. "앓고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도 질병의 한 종류라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오래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대충이라도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병원에 가면, 가령 독감이 걸렸다든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든가 하여간 대수롭지 않은 일로 갔다 하더라도 일단 "저는 이명이 들리는데요……"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마치 "옛날 옛적 어느 나라에……"처럼.

그게 무슨 자랑거리는 아닌 게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진단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그 이명이 매우 신경 쓰이고 불안감을 주는 것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어느 한의원에서 또 그렇게 시작했는데("저는 이명이 들리는데요……"), 그 병원 한의사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마음 편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명요? 그건 그냥 친구처럼 지내세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괜찮은 겁니까?" 혹은 "그럴 수도 있는 거 분명한 거지요? 이 진단이 맞는 거지요?"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이렇게 선언하면 큰일이고, "긁어서 부스럼"이란 이런 경우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괜히 해본 소리지요. 그냥 두다니요. 그것이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되고, 방치하면 점점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그게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드디어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만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것 참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습니다. 다른 얘기를 들을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린 것입니다.

 

 

 

 

이명에 대해 '완전히 관심을 끄고' 살아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증상이 시시때때로 주의를 환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조용하면 낮에도 들립니다. 물론 저녁에는 더 자주 들립니다. 말하자면 조용하면 어김없이 들립니다.

 

정년퇴임을 하니까 생활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게다가 1년쯤 후에는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훨씬 더, 아니 절간처럼 조용한 이 아파트로 이사를 왔으니까 요즘은 거의 언제나 들린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쐐~쐐~쐐~쐐~쐐~쐐~쐐~쐐~쐐~"

"찌잉─────────────"

귀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면, 요즘으로 치면 가을 풀벌레 소리처럼 들려오면, 생활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아무라도 갑자기 그런 소리가 들려오면 아마 제정신이 아니기 십상일 것입니다. 아주 예민한 사람 같으면 "미쳐 나가겠다!"고 아우성을 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소리가 들릴 때도 있고,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늘 들리게 되었고, 조용하면 언제라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렇지만 무슨 일에 신경을 쓰며 시간을 보낼 때는 들리는지 아닌지 의식하지 않고 생활하니까 괜찮다가도 조용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구'가 된 것입니다.

 

이 소리의 강도가 더 세어졌는지, 늘 그대로인지는 분간이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좀 세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뿐입니다. 그것은 제 신체기능이 아무래도 점점 더 떨어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명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령 고무줄이나 용수철은 늘어날 수 있는, 탄력을 지닌 것이긴 하지만, 그 한계 이상으로 늘이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지는 못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팽창과 수축이 여러 번 되풀이되면 아예 그 고무줄이나 용수철의 기능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듯이, 사람의 몸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상태가 되어버리면 이명이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몸을 건강하게 해주어야 하며, 그다음으로는 그 몸의 상태에 알맞은 일을 해야 하지 무리를 하게 되면 나처럼 이명을 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명을 앓게 되었다고 무슨 큰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나로서는 아주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어느 한의원에 가면 "우리 한의원의 보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나을 수 있다!"고 장담하고, 그러면 그 선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아마 수십 첩의 한약을 먹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보약은 끝이 없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또 무슨 병원에 가도 그럴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자꾸 귀를 들여다보거나 머리통 진단을 되풀이하다가 드디어 제 머리를 열어보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머리통을 열어본다!"

열어봐야 한다면 열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나로서는 이 이명 따위로 "뚜껑"을 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이 이명을 무슨 큰 질병을 가진 것으로 호들갑을 떨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어느 의사에게 들통나기 전까지는.

"어이, 이명! 좀 조용히 해봐! 내가 지금 심각한 생각을 해야 하거든? 나중에 이 일 끝나고 좀 쉬게 되면 찾아와, 알았지? 잘 부탁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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