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스쿨존의 정의

by 답설재 2012. 9. 17.

당연한듯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 그 뉴스를 보며 생각한다. '이젠 별게 다 최고구나!'

 

10년 전쯤 이야기다.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한국을 떠나며 후임대사에게 그랬다고 한다. “한국은 화장품 소비량 세계 1위, 성형 수술률 1위, 보톡스 주사 소비율 1위인 나라다.”

요즘은 그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아직도 그 순위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소개는 한국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나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호된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한다면 “참 한심한 1위”라고 할 수도 있고,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도 칭찬을 좀 받고 싶다면 “우리나라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탐미적인 여성들이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임에 분명한 근거가 되는 1위"라고 추켜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세계 1위인 것은, 이런 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짐작이지만 재산 같은 게 이유가 되어 부모나 형제를 구타하거나 원수지간이 되거나 심지어 죽여버리는 패륜아가 많은 나라로도 세계 1위가 아닐까 싶다. 또 2012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도 1위이며, 그것도 8년째 고수하고 있는 불변의 1위다. OECD 하니까 생각나는 거지만 OECD 국가 중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도 1위다.

 

어린이 교통사고율도 그렇다. OECD 국가 평균의 3배(평균 10만명/1.4명, 한국 4.4명)가 넘는다고 하니까 OECD 국가 중 1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어린이 교통안전 면에서 최하위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그 사고율은 최근에 들어 감소율이 무뎌져서 정체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스쿨존(school zone) 지정, 아침 등교시간의 녹색어머니회 활동 등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는 어린이 교통사고율 감소정책에 따른 사고율 감소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정체상태를 극복하려면, 직접적으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직접적, 적극적 감소요인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생각을 확 고쳐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는 자동차에 관한 한 촌스럽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태도는 '고자세(高姿勢)'인 경향이 강하다. 남이 볼 수 없게, 가까이할 수 없게 하고 싶어하는 것도 그런 인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처구니없다.

좋은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그 좋은 차의 성능이 다른 차보다 훨씬 빨리 달리는 것,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규칙을 무시하고 달릴 수 있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으스대는 것으로 그 좋은 차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고자세인 사람, 좋은 차를 갖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형편없는 차도 얼마든지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제발 학교 주변, 주택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그런 마음을 나타내지 않기를 부탁하고 싶다.

 

 

 

 

한국의 교장들은 교통사고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사실은 현장학습을 잘 시키지 않는 까닭도 따지고보면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아이 한 명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 공부를 잘 시켜봤자 다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교장이었을 때 교직원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아이들은 보도블록 틈새에서 피어나는 잡초처럼 멀쩡한 도로상에서도 솟아오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아파트 마당이나 학교 진입로 등에서는 부디 살금살금 다니십시오."

 

"아이들은 시멘트 벽을 마음대로 뚫고 들어가고 나오는 투명인간처럼 별안간 건물 벽 사이에서도 튀어나올 수 있는 존재입니다. 차를 몰고 학교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스쿨존(school zone)이란1 아이들이 도로나 보도블록, 건물 벽에서 솟아오르거나 튀어나올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정의하고, 교직원들은 물론 학부모, 일반 시민들에게 주지시키는 것이 정체상태인 어린이 교통사고율을 더욱 낮추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학교폭력이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에 관한 뉴스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 뉴스만 본다면 지옥이나 다름없는데도, 오늘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벼르는 사람도 있겠고, '이러다가 다시 잠잠해지겠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은 어느 특정한 면만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만 매달려 목소리를 높이고, 대책을 세우고, 뿌리를 뽑고 해서는 결코 제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벌 주는 일에 매달려서는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 종합적인 진단이 필요하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언지를 가르쳐야 한다. 교육은, 사람들이 제 정신을 갖도록 가르치는 일이어야 한다. 가령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같은 건 교육에 관한 한 바람직한 가치관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가령 "여기는 스쿨존이다. 딴데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여기선 엉금엉금 기어 가라."고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특징적인 한두 가지 면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미 전체적으로 기울어지는 둑을 호미나 삽으로 한두 군데 막아보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

스쿨존(school zone) : 교통사고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어린이 보호 구역. 보통 초등학교의 정문을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 이내의 도로에 설치되며, 이 지역 안에는 차량이 주차 및 정차를 할 수 없고 주행 속도도 제한(시속 30km 이내)을 받는다.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耳鳴)은 내 친구  (0) 2012.10.03
다시 병원에 가기 싫은 이유  (0) 2012.09.24
시원이  (0) 2012.09.13
“지금 난 아주 행복해.”  (0) 2012.09.06
외면  (0) 2012.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