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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시원이

by 답설재 2012. 9. 13.

 

 

 

 

 

"왜요?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어요?"

 

 

 

 

 

이 아이는 시원이입니다.

 

며칠간 고심해서 고른 글자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있는 그곳, 그곳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르쳐주거나 치료해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세상이 점점 삭막해져서, 내가 죽고난 다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사람이 살겠나 싶고, 요즘의 생명공학, 생명과학처럼 확실한 방법으로써 사람을 가르치는(그러니까 좀 아는 것 설명해주는 그런 짓 말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따위 일이 아니고), 혹은 마음에 병이 든 현대인들을 치료해주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아서, 이 아이를 두고 그런 기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교육이나 의학이면 몰라도, 정치까지 지배하고 싶고, 게다가 돈을 많이 모으고 싶어하는 종교인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런 일은 지금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나중에 이 아이가 나서서 "나도 하겠다"고 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았습니다.

 

 

 

 

이 아이가 태어날 때, 나는 불행하게도 생사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심장병은 가령 술·담배, 지방이 많은 음식, 칼로리가 높은 음식, 운동 부족, 이런 것들이 원인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스트레스가 주범(主犯)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얼마만큼이냐 하면 아마도 75% 정도? 그보다 비중이 높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대충 90%라고 해둡시다. 그 나머지 10%가 술·담배, 음식(지방, 탄수화물, 설탕, 소금!), 운동 부족 등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건 물론 의학적으로는 문외한의 견해지만 경험의 해석이니 그야말로 '믿거나말거나'입니다. 다만 믿으면 더 좋을 '믿거나말거나'입니다. 사실은 다른 병들도 흔히 그렇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장병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당시 나는 병원을 드나들 때였고, 퇴임은 했지만 삶의 스트레스를 계속 받고 있었으며, 그렇게 와병 중이어서 이 아이의 부모는 몰라도 바로 이 아이에겐 미안했다는 설명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이 아이가 태어난 지 21일째 되는 날 첫새벽에 소름 끼치는 놀라움으로 꿈을 깨었습니다.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 아이가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딱 한 번 얼굴을 쳐다보았을 뿐이었는데, 꿈 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 아이가, 뭐라고 할까, 지금에 와서조차 표현도 하기 싫지만 몸통이 일그러졌는데, 어떤 중년 여자가 어떻게 좀 해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자 나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얼떨결에 받아 안고 이러저리 어떻게 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그 몸통이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아서 울부짖으며 꿈을 깬 것입니다.

 

내가 "그 참, 그 참……" 하고 다시 잠들지 못하자, 아내는 별 일 있겠느냐고 애써 태연해 했습니다.

나는 몸도 몸이지만 한겨울이어서 거의 두문불출이었는데, 그날 오전에 이 아이의 탈장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아이는 그렇게 먼저 내 꿈에 나타나 아프다고 전하고, 태어난지 겨우 21일 만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칠칠하지 못한 나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아이와 나는 지금은 만나면 헤어지기 싫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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