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웃음치료

by 답설재 2012. 10. 11.

  M은 회사 기물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적이 있었다. M은 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광고판을 유성펜으로 검게 색칠을 하다 걸렸다. 사장 전용 화장실을 빼고 회사 내에 있는 모든 화장실을 그렇게 했다. 남자화장실까지. M이 광고판을 망가뜨린 이유는 거기 적힌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입니다.' 그 글을 볼 때마다 M은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변비까지 걸리게 되었다. M은 밀폐용기 생산라인에서 일을 했다. 뚜껑이 제대로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검사하는 일을 십오 년이나 했는데, 남들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불량품을 찾아냈다.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는 M을 자르지 못했다. 그 사건 후, 나는 M에게 쪽지를 보냈다. 실은 나도 그랬다고. 고맙다고.

 

                                                  윤성희, 「못생겼다고 말해줘」(단편소설 : 『현대문학』 2012년 5월호, 130~149쪽) 중에서.

 

 

 

 

  인터넷 검색창에 '웃음치료'를 넣어 보았다.

 

  스폰서링크, 프리미엄링크, 스페셜링크, 와이드링크, 많이 읽어본 글, 게시판, 사이트, 카페글, 책, 리뷰&뉴스, 블로그, 지식, 웹문서, 뉴스, 동영상, 트위터, 전문자료,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 장소(32곳), 쇼핑하우

 

  이것들만 다 열어봐도 '웃음치료'의 전문가가 되지 않을까? 관련 검색어만 해도 15종이었다.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의 '강아지 웃음치료' '애완견 웃음치료'는 한번 열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방심하고 사는 동안 이렇게 발전했구나!'

  '이 수많은 정보 중에 웃음치료와 관련된 일을 아예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만약 그 일이 생각만큼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지낼까? 웃자! 그래도 웃자! 그렇게 웃을 일을 마련하며 하루이틀, 한달 두달, 1년 2년, 그렇게 살아가는 걸까……'

 

 

 

 

  ○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책을 쳐다볼 때마다 생각났는데, 말하자면 웃을 일이 없어도 웃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래야 오래 산다며 연방 껄껄 웃어보였다. 웃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지금도 기억한다. "월요일은 시작하는 날이니까 웃고, 화요일은 화가 나도 웃고……"

  나는 그가 준 책을 보관해 오다가 최근에 '분리수거'에 내놓고 말았다.

 

  책을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렇지만 읽지도 않을 걸 갖고 있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고, 앞으로도 그 책을 읽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등표지만 쳐다봐도 '이 책을 어쩌나……' 싶었고, 웃음이 나기는커녕 부담감이 늘어나기만 했기 때문에 '이럴려면 버리고 말자!'는 결심을 해버렸다.

 

 

 

 

  교장회의에서 웃음치료 강의를 받은 적이 있다. 여성 강사가 나와서 온갖 제스츄어를 동원하며 다양한 실습을 시켰다.

  "웃어라!"

  "손을 들어라!"

  "일어서라!"

  "옆사람과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

  모두들 떠들어대며, 웃으며, 즐거워해서 나 혼자만 우울한 사람 같은 느낌을 가지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해하며 교육장이 웃음치료 강의를 받게 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 교육장이 앞에 있어도 물어보기는 난처했겠지만, 교육장은 안사말만 하고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그렇게 하며 자신의 직위가 높다는 걸 나타낸다.

  '그렇게 바쁜 사람이 자신은 언제 웃겠나? 웃기나 할까?'

  '교장들의 우울한 상태가 매우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나?'

  '교육을 하기에 앞서, 우선 우울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느낀 것일까?' …………

 

 

 

 

  노이로제에 걸린 항공사 승무원들은, 승객들 앞에서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 하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이 노이로제로 발전하기가 쉽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웃음치료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우습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에이, 사업도 잘 되지 않고, 정말 힘드는 세상이군!'

  '웃음치료는 받지 않고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건지, 원!'

  나라면 수없이 늘어놓을 불평을 그들은 어떻게 하며 지내는 걸까?

 

 

 

 

  우스울 때만 웃는 세상이 아무래도 더 좋다. 그게 편하다. 게다가 나로서는 실없이 웃는 것은 미친 사람이 하는 짓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니까 곧 죽어야 할 팔자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할 때 많이 웃을 걸…… 그러면 몇 년 더 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후회하며 죽어갈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스울 때조차도 미소만 짓기도 하고 마음속으로만 '그 참 우스운 일이야.' 하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

 

  이 글을 읽어보고, 누가 나서서 "억지로 웃고 싶지는 않고, 그래도 오래 살고 싶으면, 그럼 종교를 가져보라"며 설득하려고 대어들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웃겨 줄테니까 좀 만나자는 사람도 겁이 나고 싫다.

  제발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자부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대어 드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로 지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것만도 많이 억울하다. 그런 사람들이 전혀 우습지도 않다. 오히려 화가 나게 한다. '도대체 사람을 뭘로 알고……'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맺기  (0) 2012.11.05
오며가며 Ⅰ  (0) 2012.10.23
이명(耳鳴)은 내 친구  (0) 2012.10.03
다시 병원에 가기 싫은 이유  (0) 2012.09.24
스쿨존의 정의  (0) 201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