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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친구맺기

by 답설재 2012. 11. 5.

 

 

나에게도 '블로그 친구'가 많습니다. "많다"고 한 건 비교적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 관점에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면 "친구 신청은 사절한다"고 대놓고 선언해 놓았던데,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나는 누구라도 친구 신청을 해오면 무조건 다 승낙해 주고 있습니다(단 글이 없거나 한두 편 뿐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블로거와 상업적인 블로그는 사절). 아마 그렇게 하다 보니까 '친구(?)'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블로그를 개설해 놓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여남은 명의 친구가 생겨서 얼마 동안 '행복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그 친구들 블로그를 방문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대부분 새로운 글을 싣지 않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참 바쁘게 사는구나' 싶은 마음으로 몇 달 동안 그 짓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런 방문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래도 '친구사이'에 그럴 수는 없다 싶어서 며칠 만에 한 번씩, 혹은 몇 주 후에 한 번씩 방문해 보다가 이번에는 정말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새 글을 부지런히 싣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도 웬일인지 그 블로그 주인이 내 블로그는 잘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솔직히 말하면 좀 섭섭하고 심지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나는 딴에는 심혈을 기울여 글을 쓰지만, 그 사람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도(물론 착각인 경우가 있겠지만) 친구 신청은 자신이 해놓고 나를 방문하지는 않고 나더러 방문하기만 기대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입니다.

 

 

 

 

고백할 것이란 그런 생각으로 그 친구들 몇 명을 '잘라버렸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그 '친구'가 내가 잘라버린 걸 알고는 얼마나 괘씸하게 여겼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 중에는 남에게 호기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으며, 일단 벌여놓고는(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친구를 맺어 놓고는) 무책임하게 지내거나, '당신은 어쭙잖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내 블로그를 방문해 보라!'는 과시욕을 가진 사람이 많구나 싶었고 그게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사이를 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은 친구 신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승낙합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는 처음과 달라졌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테크닉을 터득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참 희한한 어떤 친구는 자신의 블로그를 '비공개'로 해놓고 친구 신청을 해온 경우입니다. 서로 왕래가 있다가 어느 날 사정이 있어서 '비공개'로 바꾼 경우는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친구 승낙을 했기에 찾아가 봤더니 '비공개'여서 도무지 어떤 친구인지(그런 경우도 친구라면) 알 수가 없는 경우입니다. 나도 짐작은 합니다. 내가 친구 신청을 해야 그분의 블로그에 갈 수 있는 거구나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친구 신청을 할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이참에 한 가지 더 고백할 게 있습니다. 나는 친구 신청은 다 받아주지만, 스스로 친구 신청은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완전하게 다 밝히기는 어렵지만 객관적인 것 한 가지만 들어보면 우선 신청을 받아준 친구들 중 성의 있는 분이나 본받을 점이 있는 분 한두 분만해도 나에게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다가 스스로 또 친구를 만들면 나는 정말 블로그 관리만 해도 일이 너무 많아질 것이 분명합니다.

 

 

 

 

또 다른 친구들 중에는 블로그를 개설해 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자료도 싣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아마 '나도 블로그를 한번 운영해보자!' 싶어서 개설해 놓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거나 사업상(!) 분주해서 도무지 블로그 같은 것에 매달릴 여가가 없을 경우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나처럼 퇴임을 하게 되면 좀 한가해지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주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는 무슨 글이든 쓰게 될 것 아닙니까?

 

블로그 친구들의 유형을 다 설명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대충 이야기하면, 어떤 분은 정치를 해보려는 뜻이 분명하고, 어떤 분은 멋진 사업을 하는 분이고, 또 어떤 분은 그 블로그를 이용해서 맛집이나 무슨 토종꿀(그 종류를 다 열거하기는 불가능한 일) 같은 걸 소개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는 한동안 토종꿀이나 자연산 미역, 밤 같은 수많은 상품을 소개하는 분의 블로그에도 찾아가 상품 소개나 맛집 소개가 아닌 글에 댓글도 열심히 달아보았는데, 그런 분은 그럴 때는 무슨 품앗이 삼아 내 블로그에 찾아오다가 내가 단 며칠만 찾아가지 않으면 곧 그만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분도 있습니다. 어쩌다가라도 자신이 쓴 글을 실어주면 좋겠는데, 어김없이 남의 글을 스크랩만 하는 분입니다. 나는 정말이지 그런 블로그를 방문할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간혹 실수로 열어보고는('이게 누구더라?') 자신의 경솔함에 후회를 많이 합니다. 정보화시대여서 그럴까요? 곁에 다가오는 신문, 방송, 잡지만 해도 다 볼 수 없는 세상에 남의 글 스크랩만 모아두는 블로그를 내가 왜 찾아가야 하겠습니까!

 

 

 

 

한 가지 유형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한번 멋지게 지내보자!'는 유형입니다.

그런 유형은 사사건건 내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짊어진 멍에 같은 나의 건강에 관한 글을 쓰면 "아, 그건 이렇게 하면 간단하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나!"라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꽉 막혔던 내 심장을 뚫어주고, 내가 죽는 날까지 정기적으로 진찰을 해가며 약을 처방해주기로 한 그 주치의는 뭘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 분들은 그 외의 일에도 다 간섭(!) 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우울해하는 분위기의 글을 쓰면 자신이 책임지고 달래주겠다는 식이고, 인생은 살아볼 가치가 충분한 것이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명랑쾌활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식입니다.

그런 분들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서로 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잠시도 쉬지 않고) 연락이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 줄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사실은 아직 몇 살 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참 어처구니없게도 인생은 60부터니 뭐니 하니까), 나 스스로는 겪어볼 만한 일은 웬만큼은 겪어봤고, 그러므로 어쩌면 내일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얼마든지 '아, 그렇구나' 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사실은 슬픈 일, 기막힌 일, 엄청난 일, 하늘을 날고 싶을 만큼 기쁜 일, 즐거운 일……들을 겪었고, 나름대로는 이제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도 얼마든지 남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을 가졌다는 걸 그런 분은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라고 한다고 해서 가고, 웃자고 하면 웃고, 적어도 그럴 단계는 지났다는 걸 모르는 것입니다. 또 나는 이미 바로 앞에 놓인 이 강(江)만 건너면 모든 게 그만이라는 걸 너무나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저 너른 들판에서 한번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가 가자"는 요청을 한다고 해서 "까짓 거 그럽시다!" 하고 되돌아갈 형편이 아니라는 것, 아니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든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에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뭐라고 할까요? 뭇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엇을 주겠다고 해서 그리 쉽게 좋아하거나 그럴 마음도 여유도 없다는 것, 지금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더 설명하고 싶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번 잘 사귀어보자" "나하고 상대하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식으로 다가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분들을 대하면, 나는 이 이명(耳鳴) 현상이 아주 심해지고, 짜증이 나고, 좀 속된 표현을 하면 미칠 것 같아집니다.

 

 

 

 

그러나 내 친구 중에는 정말로 우스개로라도 "잘라버릴 수 없는 친구"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분 하고는 그분이 나를 잘라버리기 전에는 끝까지 갈 작정입니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댓글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나로서는 그냥 '아, 이런 분도 있구나!' 하면서 지내면 그만입니다. 심지어 그런 분 중에는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는 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란 오프라인이거나 온라인이거나 단 한 명도 어려운 것 아닌가 싶습니다.

 

꼭 밝혀둘 것이 있습니다. 이 어쭙잖은 블로그 <파란편지>를 그분의 컴퓨터 <즐겨찾기>에 넣어주신 분들입니다. 아! 그런 분은 친구로 다가온 분들보다 훨씬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분 한 분을 확인할 때마다 느끼는 그 감동을 나는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분 중에는 내가 찾아가거나 말거나 늘 찾아오시는 분도 계시지만, 몇 달이 가도 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삶이란 게 어디 그리 간단합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읽어도 그만 읽지 않아도 그만인 이까짓 <파란편지>, 세상에는 사진이나 그림만 봐도 얼마든지 좋은 블로그들이 많음에도 이 <파란편지>라는 고약한 블로그에는 썼다 하면 한참을 읽어야 하는 잔잔한 글씨의 '편지'가 대부분이니 이 바쁜 세상에 일상적으로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할 리가 없지요.

그러므로 나는 그분들 한 분 한 분이 '이거 괜찮구나!' 하며 이 블로그를 자신의 분신 같은(요즘 생활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 컴퓨터 '즐겨찾기'에 넣어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고마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형편없는 몸과 마음으로 외롭고 괴로운 날도, 이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살아 있는 것을 고마워할 수 있는 뚜렷한 이유 중의 한 가지가 바로 그런 분께서 나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내 성격도 털어놓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만 봐도 나는 분명 '까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코 이 까칠함을 버리고 살아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까칠함'과 이 '자존심'을 버리라고 하면 나에게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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