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올 가을, 끊임없이 반복될 가을입니다.
2012년 가을,
혹은 마지막 가을일 수도 있습니다.
나로 말하면 그 어떤 가을도 다 괜찮고 고맙고 좋은 가을입니다.
아무리 찬란한 가을도, 바람에 휩쓸려가는 낙엽 소리가 들리면 쓸쓸해지고,
골목길 조용한 곳에 모여 있는 낙엽을 보면 더 쓸쓸해집니다. 이듬해 가을이 올 때까지는 설명이 필요없게 됩니다.
이 가을에
37년 전 어느 교실에서, 내가 그 학교를 예상보다 일찍 떠나는 섭섭한 일로 겨우 5, 6개월? 날마다 나를 바라보던 한 여학생,
그 여학생이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는 순간에 할 인사를 애써서 연습했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랬는지, 인사는 나누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 치고, 나는 그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도 거의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시간만 가고……
겨우 내가 잘 다니는 곳, 몸이 무거울 때나 거뜬할 때나 곧잘 한번씩 다녀오는 곳은 보여 주었습니다.
그곳은, 사실은,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내 영혼이 나비처럼 날아다닌다면,
아마 걸핏하면 그곳을 찾아갈 것입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그러면 오늘은 잊고 있었던, 유명한 중식당(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자장면 혹은 코스 요리)에도 함께 가볼 작정입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해도, 나에게는 오늘만으로도 '사치'일 것입니다. 과분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함께 걸으며 나는 그 애의 손을 많이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 고운 손에 내 순수했던 날들의 영혼이 스며 들어가기를 기원했습니다.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것도 있고,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나는 예전에 내 앞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잘 생각납니다. 그들은 대부분 나를 잊고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그래도 좋고, 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때의 내 영혼은 그 애들의 마음속에 스며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 하나하나가 다 그립고, 어디서든 행복하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는데도,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마음은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고맙고, 이왕이면 내 몸은 작지만 내 마음은 노랫말에도 있는 것처럼 "바다처럼 넓고 산처럼 높아서" 그들 하나하나의 영혼을 내가 다 책임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더구나 저 아이처럼 예전의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 아이를 만난 이 가을이 나에게는 그 얼마나 좋고 고마운 것인지,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