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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대통령의 연인'이 본 한국의 교육

by 답설재 2012. 7. 5.

 

 

 

 

 

‘대통령의 연인’이 본 한국의 교육

 

 

 

 

 

 

 

 

  지난 6월 어느 날, 한 신문에서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과 열애 중이라는 한국인 방송 진행자 그레이스 리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1 제목은 「대통령의 연인」이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인용(거의 轉載)과 비판이 무성하지만, 그런 기사나 소문에 무관심한 사람은 그레이스 리가 누군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첫머리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레이스 리, 본명 이경희(李景熙·30)는 ‘필리핀의 여자 강호동’쯤 되는 인물이다. 필리핀 3대 민방인 GMA에서 그는 보도·연예·스포츠 분야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많을 때는 주중 5개, 지금도 3개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웬만한 연예인 뺨칠 만큼 인기 있던 그가 새삼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올 초 우리가 지금은 새누리당 의원이 된 이자스민 이야기로 열을 올릴 때였다. 느닷없이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열애한다는 설이 터진 것이다. 1982년생 젊은이 인터뷰가 성사된 배경엔 필리핀 한인들의 비원(悲願) 같은 게 있었다. 주요 8대 패밀리가 번갈아 대통령을 낸다는 나라에서 ‘퍼스트레이디’의 무게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혼인 성사까지 갈지는 하늘만 알긴 하지만 말이다.

 

 

 

 

 

  기자가 그녀에게 “필리핀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할라나’라는 말이 있어요. 영어로 번역하면 ‘Let it be’(그대로 놔두라)쯤 될 겁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웬만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큰 지진이 나서 집이 없어진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울고불고 했을 텐데 그가 ‘살아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보고 속으로 놀랐어요. 한국인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잖아요. 그러니 50년 만에 그렇게 빨리 발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대통령의 연인'은 또 왜 한국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민 온 뒤 1년에 한 번씩은 꼭 한국에 갔어요. 그때마다 목격한 게 있습니다. 유치원생들이 학원 가는 버스 타는 모습이었죠. 한결같이 표정이 어둡더군요. 필리핀의 또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아이’로 불리는 시기는 길어야 10년이잖아요. 놀이터에 아이가 없고 학원에만 아이가 붐비면 곤란한 것 아닌가요.”

 

 

 

 

  오바마가 아니면 우리 교육을 누가 칭찬할까요? 오바마 말고도 우리 교육을 칭찬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우리가 풀어야 할,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 우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것은 이러한 지적을 받으면서도 심각하게 여겨야 할 사람은 저런 지적이 '엉터리'라고 여기는 건지는 모르지만 ── 거의 아무도 "그래, 이제는 고쳐야 한다!"고 나서지를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소리는 본래 하는 것 아닌가?"

  "쓸데없는 소리…… 우리 유치원생들의 표정이 어때서? 아이들이 다 그런 것 아닌가?"

  "교육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잔소리를 늘어놓는단 말이야.'"

  "뭐? 어째? 필리핀과 우리를 비교해? 도대체! 비교할 나라와 비교를 해야지, 어디 원!"

  "지금이 어느 시댄데, 유치원 아이들이라고 뛰어놀게 하나? 이와 같은 국제경쟁시대에!"

 

  예상되는 비판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앨빈 토플러가 30여 년 전에 지적한 산업화 시대의 일그러진 교육(시간 엄수, 복종, 반복작업)의 형태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점점 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뛰어놀 땐 뛰어노는 교육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게 교육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유치원에서는 한글도 가르치고─심지어 이미 가정에서 가르쳤다고 치고─ 한자, 영어도 가르칩니다. 유치원 교육과정에는 그렇게 가르치라고 되어 있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그걸 가르치지 않으면 유치원 운영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현실은 개별 유치원의 것일 뿐입니다. 정부에서는 "우리는 정상적으로 가르치라는 교육과정 기준을 제시해주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누구에게 책임이 있습니까? 누가 바로잡아야 합니까?

 

  그렇게 가르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중에 모두 박사가 됩니까,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로 넘쳐나게 됩니까?

  유치원만 그렇게 하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정상적으로 가르칩니까? 대학교육은 잘 이루어집니까?

 

  한 마디만 더 하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학원에 가서 수학, 과학 선행학습을 해야 한답니다. 그래야 중학교 반 편성 때 제대로 가르치는 반에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명문 중학교랍니다.

  학원은 선행학습을 하고, 학교는 그걸 바탕으로 반편성을 하고,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겠습니까?

  더 이야기할까요?

 

  대통령의 연인이 한 말이라서 대단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교육에 대해 '생각'이 있는 사람은 거의 누구나 하는 얘기입니다. 다만,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난 체하지만, 교육에 관한 한 아프리카에서도 이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증거를 댈까요?

 

 

 

 

 

 

  1. 조선일보 2012년 6월 23일 토일 섹션 Why? 1~2면,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과 열애 : 한국인 방송 진행자 ‘그레이스 리’ 인터뷰 기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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