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그다음 날 아침부터 40일에 이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 여정이 시작되기 전날 밤, 영혼은 땀내가 밴 베게에 가만히 누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감겨주는 모습을 지켜본다. 또한 문과 창문과 바닥의 틈새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방 안을 연기와 침묵으로 가득 채우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혼이 강물처럼 집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무렵 영혼이 자기들을 떠나 과거에 머물렀던 곳, 즉 젊었을 때의 학교와 기숙사, 군대 막사와 주택, 허물어졌다가 다시 지어진 집들, 그리고 사랑과 회한, 힘들었던 일들과 행복했던 일들, 희망과 희열로 가득했던 일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들을 둘러보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다 영혼이 너무 오랫동안 아주 먼 곳에 가 있게 되면 돌아오는 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안다. 이러한 까닭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해오던 의식을 중단하고 몸에서 풀려난 영혼을 환영하기 위해, 청소를 하지도 않고 씻거나 정돈하지도 않고, 40일 동안 그 사람의 소지품들을 치우지도 않는다. 영혼이 미련과 그리움 때문에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어떤 메시지나 신호나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하는 것이다.
제대로 유혹하면, 영혼은 다시 돌아와 서랍을 뒤지고 찬장 안을 들여다보고 접시걸이와 초인종과 전화기를 살펴보면서 그것의 편리함을 떠올리고는, 손으로 만져보기도 한다. 그 소리로 집안 사람들에게 자신이 와 있다는 걸 알리며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
할머니는 전화로 조용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내게 말하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다. 할머니에게 '40일'은 사실이자 상식이었으며, 이는 시부모와 친정부모, 언니, 사촌들과 고향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보내면서 물려받은 지식이었다고. 그것은 특별히 신경을 쓴 환자를 할아버지가 잃을 때마다, 할머니가 그를 위로하려고 되풀이했던 말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그걸 미신이라고 했지만, 할머니가 나이 들어갈수록 그러한 생각이 더욱 굳어지자 그냥 용인했다.
테이아 오브레트Tea Obreht라는 작가가 쓴 『호랑이의 아내』(왕은철 옮김)라는 장편소설의 첫머리입니다.
그동안 몇 번 들어본 이야기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40일이 49일일 수도 있고 드물게는 2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아주 드물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평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평생 죽은 사람의 그 영혼을 놓아주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기는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영혼이 그 끈을 끈질기게 놓아주지 않는 그 사람 곁에 머물며 남들처럼 먼 하늘로 훌훌 날아가고 싶은 하염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일(忌日)에만 우리 곁으로 내려오는 영혼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다 쓸데없는 생각일까요? 그렇지만 더러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게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글이 소개된 『현대문학』(2011.9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주(註)가 있습니다.
* 미국 문단에 큰 관심을 받으며 등장한 테이아 오브레트Tea Obreht의 첫 장편소설 『호랑이의 아내The Tiger's Wife』를 일부 소개한다. 전작은 곧 현대문학에서 출간될 예정이다(이 소설은 2011년 가을에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작별(作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좀 더 큰 어떤 다른 세상 (0) | 2014.06.13 |
---|---|
미안한 봄 (0) | 2014.05.02 |
동요 '겨울나무' (0) | 2011.12.18 |
어느 학부모의 편지 (0) | 2010.07.13 |
그리운 사람들 (0) | 2010.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