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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작별(作別)

동요 '겨울나무'

by 답설재 2011. 12. 18.

저녁나절에 라디오에서 동요 '겨울나무'를 들었습니다.

오십여 년 전, 방학 때만 되면 돌아가 조용히 지내던 그 시골집 건넌방에서 듣던 라디오가 생각났습니다. 조용한 초겨울 저녁때여서 그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라디오는 초겨울 저녁때나 듣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FM 프로그램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같다는 느낌입니다. 변하지 않았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요. 우리가 세상에서 사라진 날에도 오늘 같은 초겨울 저녁나절에는 그리운 우리 가곡, 동요들이 어김없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6학년을 맡아서, 어슬프게 가르친 나에게 그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좋아하시는 노래가 뭐예요? 18번요."

곧 방학이고 그러면 졸업이 이어질 초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은 영광스런 일이라는 걸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얘들이 어떤 대답을 기대하는 걸까?'

두어 가지 팝송, 유행가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란 어떤 노래를 말하는 걸까?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혼자 있을 때나 생각날 때마다 흔히 불러보는 노래?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듣고 싶어하는 노래?'……

그러다가 '그래, 말 그대로 좋아하는 노래면 좋겠지?' 생각하고 그런 쪽의 대답을 했습니다.

"난 '겨울나무'도 좋고…… '등대지기'도 좋아. 그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좀 주제넘지만 내 마음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는 화려하거나 대단한 사람은 아니어도 적어도 겨울나무처럼 혹은 등대지기처럼 되고 싶어. …………"

 

그 중에는 나의 그 대답을 잊지 않은 제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블로그 방명록에 이렇게 쓴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 요즘은 노래 잘하세요? 옛날에 노래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니까 노래를 제일 못한다고 하시면서 '등대지기', '소나무'를 가르쳐 주셨는데 아직도 그 두 곡은 잘하시나요? 저도 제 자식이 노래 가르쳐 달라고 할 때 그 두 곡만 가르쳐 주었는데요.

그 노래만 들려오면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죠. 지금 생각하면 노래는 못 하신 것 같은데 그땐 선생님이 정말 노래를 잘하는 걸로 들렸어요.

 

그런 대답을 한지도 다시 30년이 훨씬 더 지났고, 그리하여 퇴임을 해버렸고, 겨울이 자꾸 지나가서 사람들은 서서히 나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다 잊기 전에 저 겨울나무 곁으로 가야합니다.

 

 

 

 

교육부, 『초등학교 음악 6』(1997 초판, 2001 발행), 44~45쪽.

 

 

겨울 나무

 

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

 

 

1.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2.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 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작곡가 정세문 선생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은 자료가 나왔습니다.

 

 

한석(閑石) 정세문은 1923년 3월 25일 황해도 봉산군 사인면 계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춘천사범대학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춘천초등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로 있었다. 이후 서울대 음악대학과 건국대 사범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음악교육학회 회장, 동요작곡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일평생 동요에 심취하여 작곡 활동을 하였고 나아가 가곡 작곡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1999년 1월 8일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에서 타계하였다.

                                                                                                                                                  <출처 : 디지털성남문화대전>

 

 

이 자료에는 나오지 않지만 정세문 선생은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냈습니다. '편수국'이란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하고 교과서를 편찬하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을 "편수관"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교육부 편수국의 편수관으로 들어가 나중에는 그 부서의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나이가 들어 정년을 5년 반 남기고 학교 교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저 '겨울나무'를 작곡한 정세문 선생이 나의 선배 편수관이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한때 편수관을 지낸 것에 긍지를 느낍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혼자 분당 중앙공원을 찾아가 '정세문 노래비'를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옛날, 그 아이들에게, 이제 알고 보니 정세문 선생이 작곡한 동요를 "좋아하는 노래"라고 이야기한 것이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다시 세월이 흐르고, 나에게는 기억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날이 되어도, 저 아이들은 -"아이들" "아이들" 하지만 사실은 이제 나이가 오십을 바라보는 그들은- 오래오래 남아서 '겨울나무'처럼, 마음으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을 나를 좀 기억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나는 이승이 아닌 곳에서라도 그 "아이들"을 위해 사시사철 그들에게 휘파람을 불어줄 것입니다. 몸은 사라져도 영혼은 남아 휘파람 정도의 소리쯤이야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동요 '겨울나무'를 좋아한 나의 변치 않는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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