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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사촌누나

by 답설재 2012. 5. 16.

 

 

 

 

사촌누나는 지금 문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웬만한 나이가 되면 흔히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누나는 삶에 지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그런 생각이 들면 이 세상이 원망스러워집니다.

 

우리가 시골 살 때, 정말 아무것도 없이 그렇게 살 때, 명절이나 제사 때 찾아가던 우리 큰집은, 속리산 깊은 계곡의 '도황골'이라는 산골짜기에 있었습니다. 백부께서 정감록(鄭鑑錄)을 아주 좋아하셔서 장차 난을 피한다며 그 골짜기로 들어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난(亂)이라면 그 판단 자체가 난(難)이었을 것입니다. 백부의 그 판단은 당연히 어려운 살림의 근본 원인이 되었고, 그 골짜기를 나와서도 한동안 지난함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교과서에 나오는 '의 좋은 형제'보다 더 우애로운 분이어서 농사가 끝나면 '형님댁' 빚을 갚고 양식을 대어주며 지내는 걸 최우선으로 했고, 엄마는 그 빚이 끝나자마자 8남매를 낳아 놓고 48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찾아가는 속리산 속의 그 마을에는, '이런 골짜기에?' 싶도록 개울을 따라 저 위로부터 저 아래까지 제법 여러 집이 살았습니다.

 

내가 나타나면 사촌누나는 친동생들이 수두룩한데도 나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친구네로 밤낮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나를 자랑할 때의 누나는 이제 부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했습니다.

산에서는 개암, 머루, 다래, 으름을 따주었습니다. 누나는 무엇이든 나를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큰집에 갈 날이 돌아올까봐 겁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엄마 곁을 떠나는 게 싫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먼 거리인데도 아버지는 버스를 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때로 버스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내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만큼이나 걸어왔는데……"

"조금만 더 걸으면……"

그러다보면, 하루에 두어 번만 다니는 버스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삿날이 돌아오는 것이 싫고, 명절조차 싫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집에 있는 동생들이 부러웠고, 큰집을 다녀와야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진을 보자마자 누나 생각이 났고, 누나의 삶이 생각났고, 누나가 그리워졌습니다.

누나가 일찍 시집을 가서 낳은 아들을 등에 업고 시내에서 공부하는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사탕 한 봉지를 사주고, 역에 나가 배웅했습니다. 그냥 누나는 지금 어렵구나 그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럭저럭 50년 전 일입니다. 그때의 누나의 모습과 누나의 눈시울을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그리움은 이제 나만의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난번에 전화했을 때의 누나는, 감추려고 애를 썼겠지만 지친 음성인 줄 당장 알 수 있었습니다. 누나는 삶에 실망하고…… 나에게도 실망한 것일까요?

 

 

 

 

누나는 말이 없고, 아무도, 이젠 아무도, 옛 이야기를 정확하게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나처럼, 기억하고 싶은 것, 저절로 기억되는 것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내가 억울하다는 것에 대해서 정확한 증언을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승에 가면 엄마나 아버지가 나에 대해 증언해주려나?'

 

 

 

 

 

내 마음속의 누나는 아직도 저 으름덩굴 같은데 누나는 나보다 훨씬 늙어버렸고, 나를 다 기억하지 못할 것이 한없이 서글프고 서럽습니다. 누나는 우리 아버지, 엄마의 농삿일을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어서 우리 집에 있을 때는, 내가 큰집에서 지낼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아주 들에서만 지냈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온 우리 집 사정 때문에 우리 아버지, 엄마 곁을 떠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두 분 다 저승에 가버려서 아무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 심지어 그 사촌누나도 그걸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를 떠나 우리 셋이서 만나고 그걸 이야기할 날이 그리 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승에 좀 더 남아 있을 내 아내가 그 장면을 나보다 더 좋아할 것입니다. 지금 남은 것은 오로지 그것뿐입니다.

저 으름덩굴처럼 곱고도 맑던 우리 사촌누나는 이젠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한때 함께 근무한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얻어온 으름덩굴 사진입니다.

                                             ☞ http://blog.daum.net/cyj5362/9236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