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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여기가『벤야멘타 하인학교』?

by 답설재 2012. 1. 17.

 

 

 

 

 

여기가 『벤야멘타 하인학교』?

 

 

 

 

 

  이곳은 학교다. 이곳에 온 학생들은 있는 힘껏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힌다. 매일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신체의 각 부위로부터 욕망을 제거하는 연습이 시작된다. 두 손은 무릎 위에 가만히 올린 채 책상 아래에 숨겨둔다. 눈은 멍하니 허공에 박아둔다. 입술은 단호하게 꽉 다물고, 귀는 활짝 열어 호출이나 명령에 대비한다. 수업은 오후 세 시에 끝나지만, 끝나거나 말거나 큰 차이는 없다. 학생들은 자유시간에도 적막 속에서 적막이 되기 위해 애쓴다.

  이곳의 교육목표는 가장 하찮고 미미한 존재를 양성하는 것, 학생들의 이상은 흠잡을 데 없이 동그란 ○이 되는 것, 생각을 지우고, 존재감을 지우는 일에 유능해지는 것.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이건, 이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교육을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묘사할 수야 있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학교교육을 저렇게 묘사한 줄 알았습니다.

 

  가령 '학생들은 있는 힘껏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힌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우리 아이들은 거의 모든 시간에 교사의 설명을 듣고만 있지.'

  '생각하고 싶고, 말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고, 활동하고 싶은 걸 참아야 하지.'

  '모든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초기부터 시작되는 그런 훈련에 곧 익숙해져서 몇 달 후면 당장 말하고 싶은 걸 참는 훈련에서부터 익숙해지지.'

 

  본래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 공부부터 해야 하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까? 그렇다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겠군요. 사실은 이런 설명을 길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우리는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고 논술도 가르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더러 서술형 평가니 뭐니 하지만, ①②③④⑤ 중에서 고르고, ○×로 표시하는 게 대세(大勢)입니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어떻습니까?

  "매일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신체의 각 부위로부터 욕망을 제거하는 연습이 시작된다."

  "두 손은 무릎 위에 가만히 올린 채 책상 아래에 숨겨둔다. 눈은 멍하니 허공에 박아둔다. 입술은 단호하게 꽉 다물고, 귀는 활짝 열어 호출이나 명령에 대비한다."

  "수업은 오후 세 시에 끝나지만, 끝나거나 말거나 큰 차이는 없다. 학생들은 자유시간에도 적막 속에서 적막이 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다행(多幸)'입니다.

  『현대문학』 2011년 4월호에서 읽은 신해욱 에세이-비성년열전 제12회 「100%의 그림자-『이민자들』의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에서 본 이 글은, 로베르트 발저의 소설 『야콥 폰 군텐』의 무대가 되는 벤야멘타 학원을 묘사한 것이랍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큰 제목으로 하고, 원제인 『야콥 폰 군텐』은 부제로 달았답니다.

 

  신해욱은 이 에세이에서, 놀라운 사실이라고 하면서 '하인학교'라는 데가 정말로 있었으며, 로베르트 발저는 20대 후반이던 1905년 무렵 실제로 베를린에 있는 하인학교를 다닌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인학교의 우등생이 아니었을까 싶은 한 남자의 일생, 즉 빈프리트 제발트 Winfried Georg Sebald의 소설 『이민자들』의 주인공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Ambros Adelwarth의 '기이한' 일생을 소개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한 것은 이 에세이가 오늘날의 학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의 기이한 일생을 소개한 글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개운한 것은 아닙니다. 신해욱은 이렇게 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워낙에 기이하고 악몽적인 세계라, 나는 당연히 팔 할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겠거니 생각했다. 학교의 임무라는 게 실은 현세대의 규율과 도덕을 다음 세대에게 내면화시키는 일이니, 헛된 판타지를 제거한 학교의 알레고리가 바로 이 사도마조히즘풍 하인학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에게 놀라웠던 건 '하인학교'라는 데가 정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 세상의 수많은 직업이 '서비스service'를 전문으로 하고 있으니, 알고 보면 다들 부분적으로는 '하인servant'이고,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하인학교를 다닌 거나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헛된 판타지를 제거한 학교의 알레고리가 바로 이 사도마조히즘풍 하인학교가 아닐까'(?)

  '알고 보면 다들 부분적으로는 '하인servant'이고,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하인학교를 다닌 거나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신해욱의 에세이는 그렇다 치고, 제가 지금 신경과민인 걸까요? 잠 좀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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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해욱 1974년 춘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1998년 『세계일보』 등단.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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