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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남태식 「청명」 서정주 「花蛇」

by 답설재 2011. 10. 12.

청 명

 

 남태식

 

맑은 눈은 아름답다

중년에 들었어도 맑은 눈은 더 아름답다

그 사내는 눈이 참 맑았다

눈이 너무나 맑은 그 중년의 사내 생각하다가

속내를 감춘 눈이 붉은 나는 또 도마뱀처럼 몸이 달았다

 

 

 

전철역에서 본 시입니다. "속내를 감춘 눈이 붉은 나는 또 뱀처럼 / 몸이 달았다"였는데 인터넷에 들어가봤더니 "속내를 감춘 눈이 붉은 나는 꼭 뱀처럼 몸이 달았다"로 소개되고 있기도 했습니다. "속내를 감춘 눈이 붉은 나는 또 뱀처럼 몸이 달았다"도 좋고, "속내를 감춘 눈이 붉은 나는 꼭 뱀처럼 몸이 달았다"도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둘 중 한 가지가 더 적절할 것이 틀림없고 시인은 그렇게 썼을 것입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눈이 너무나 맑은 사내'는 바로 이 장면 속의 사내 같은 사람일까요? 그는 행복한 사내일까요?

 

"다시는 여기 오지 않으시겠지요."

이번에는 남자가 몸을 일으켜 우뚝 섰다. 그때 안 데바레드는 그가 아직 젊다는 것을, 어린아이의 눈처럼 맑은 그의 두 눈에서 석양빛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여자는 시선 너머 그 푸른 눈동자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더 이상 못 올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1

 

 

이 시를 보니까 서정주 시인의 「花蛇」 생각이 났습니다.

花蛇는 꽃뱀일까요?

麝는 '사향노루 사'자니까 첫 단어는 '사향'이군요. 저 글자를 한참 찾았습니다.

 

 

 

花 蛇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 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 같이 고운

입술……스며라, 배암!2

 

 

                                                           

시인은 '속내를 감춘 붉은 눈'조차 저렇게 노래하므로, '뱀처럼 달아오른 몸'조차 거리낌이 없으므로, 시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가, 그렇게 보이는가 싶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서정주 시인도 이미 예전에 '스물난 색시 순네의 고양이 같이 고운 입술'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그들 아니면, '사느라고', 혹은 체면 차리느라고 달 뜨고 꽃피는 것도 모르고 지내기 쉽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1.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문학과지성사, 2009, 1판6쇄), 54쪽. [본문으로]
  2. 民音社 世界詩人選 ⑫-徐廷柱 詩選, 1974, 20~21쪽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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