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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도서관은 없다」

by 답설재 2011. 10. 14.

 

 

 

 

 

      도서관은 없다

 

                    최 금 진

 

 

도서관 의자들이 모두 일어나 반란군처럼 밖으로 뛰쳐나가고

취업을 위해 앉아 있던 의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도서관 의자들과 한바탕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실업의 인간들이여 투항하라

실업은 도서관장님이 해결할 몫이 아니다

세상은 봄이어서 여기저기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고

수능필살기, 만점9급공무원, 부동산중개 등등의 책들이

공중에 날아올라서는

화르르 책 속의 글씨들을 네이팜탄처럼 터뜨리고

집에 가라, 집에 가서 차라리

아직 웃음의 흔적 기관을 자극할 만화책이나 봐라

벚꽃잎이 낙하산을 타고 도서관 마당을 점령하는데

오늘날 인류가 실용서적을 내기 위해 나무를 벤 것 말고 뭐가 있나

기원천 천칠백 년에 사라진 모헨조다로, 하라파 같은 도시들이

도서관 벽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여긴 글렀어요, 다음에 만나면 나의 돈 많은 신랑이 되어주어요

젊은 도서관 사서는 의자에 깊이 몸을 눕힌 채

아득히 먼 문명이 되어버린 첫사랑 애인을 생각한다

침묵의 언어를 젊은 나이에 터득한 사서가

이 전쟁의 주모자는 아니다

사람들 귓구멍을 콱 틀어막은 이어폰에선 음악이 줄줄줄 샌다

벚나무 꽃들이 피워놓은 화형장으로

폭삭 늙어버린 젊은이들이 끌려 나간다

실업, 실업의 시대

연애편지 따위의 글을 가지고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도서관 관장님은 말씀하신다

당신들은 모두 포위되었다, 투항하라, 오늘은 벚꽃이 피는 날이다

벚꽃이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당장 아지랑이 속에서 증발하는 햇빛 한 장씩 읽고 오라

도서관 의자들이 모두 달아나 허공에 둥둥 떠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꽃들이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현대문학』 2010년 12월호에서 본 시입니다.1

 

  어느 하루, 축제처럼

  도서관이란 도서관은 모두 이런 행사를 가지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제가 지금 큰 일 날 소리를 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다만 저는 지금 이 시를 읽고,

  '바로 이거야!' 싶어서 훼방을 좀 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뿐입니다. 말하자면 공평하게 손해가 가거나 공평하게 쉴 수 있는 장난을 치고 싶은 것입니다. 학교 건물이 '활활' 불타 버리는 걸 바라보던 중학교 때의 어느 날 밤처럼(그럼에도 우리는 등교했고 고생만 더 했지만).

  왜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어른들 눈길 미치지 않는 사이에 온갖 것들을 꺼내 흩어놓고 야단법석을 하는 방에 들어섰을 때, 그만 세상사 다 잊어버리고 그 아이들과 어우러져 한바탕 재미있게 놀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 아니, 그럴 때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 아, 그럼 제가 지금 또 실수를 했습니다. 도서관이 없어질 리가 없으니까 '마음놓고' '머리 싸매고' 실컷 공부나 하십시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저는 다만 마음 편하게,

  '아, 이게 뭔가. 벚꽃은 피는데……' 아니면 요즘처럼 '가을이 깊어가고 낙엽은 지는데……' 싶으면,

  '다시 한 해를 이렇게 시작해야 하는가……' 아니면 요즘처럼 '다시 한 해가 이렇게 가는가……' 싶으면,

  단 하루만이라도 단체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고,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날은 축제 같아지고,

  그런대로 세상은 조금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이 시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겨 봤을 뿐입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이보다 더 재미있는 시가 있으면 한번 내놓아 보십시오.

 

 

 

 

 

  1. 182~18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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