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꽃 사이로
전재승
사랑이여.
안개꽃 사이로
너를 그려본다.
불러도 대답할 리 물론 없지만
더러는 아련한 미소로 다가와
별이 되고, 꽃이 되고
바다가 되는 내 사랑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노래가 되고, 목숨이 되는
내 사랑 너를 위하여
부르면 대답할 사랑, 지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느 역에 이 詩가 새겨져 있어도 이미 사랑에 눈이 멀어 보이지도 않겠지요.
그러므로 이 詩는 이도저도 다 지나가버린 사람을 위로하는 詩일 것입니다.
사랑이여.
이미 흘러가버린 우리의 일들은 어떻게 합니까?
한때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이러지 말고 진작 시인이 되었다면, 어느 역에 이처럼 고운, 누군가 당장 곡을 붙이고 싶을 시 한 편, 그 딱 한 편이라도 새겨진다면 차라리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랑이여."라든가 "내 사랑 너를 위하여"에서는 내 친구 P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강촌이라는 곳을 지나며 미소를 짓더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지금도 예쁜 사람 보면 연애를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함께 강촌에 갔던 여인으로 詩를 쓴 얘기로 옮겨가더니 그 시를 본 부인께서 글쎄 용하게 알아맞추더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고백해버리고 홍역을 치루었다는 P 시인을 바라보며 '에이, 바보 같으니라고." 하다가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있구나. 그래서 시인이 되었구나.' 싶어서 숙연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시인이 어느 날 점심 때 불쑥 찾아와서는, 주택가 저 아래 길 모퉁이 다방의 예쁜 마담이 있어
"일요일이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어서 심심해요……"
몇 년 전 초겨울 어느 일요일 아침나절에 걸어온 그 전화를 부인에게 들켜 혼쭐이 났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어서, 시인은 참 어쭙잖은 일로 혼쭐이나 나며 살아가는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기야 사랑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그 사랑을 제게 이야기했겠습니까? 진짜 '사랑'이라는 걸 했는지 그건 알 수 없는 게 사람들의 사랑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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