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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군산 서해방송」

by 답설재 2011. 7. 26.

                      군산 서해방송*

 

 

                                                  심창만

 

 

푸른 유리병에 석유 사러 갈 때

산 노을 넘어오던 어부들 안부

바다보다 깊은 산골 나 어릴 때

귀머거리 염소와 함께 듣던 방송

빈 부엌에서 눈 젖은 쥐들이 쥐약을 먹을 때

군산시 해망동의 한 미망인이

가느다란 전파로 「해조곡」을 불러주던 방송

쇠죽 끓이다 말고 집 나가고 싶을 때

식은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듯

오래오래 내 귀를 들여다본 방송

 

흘러간 노래보다

내가 더 멀리 흘러온 것 같은데

아직도 노을을 보면

석유 냄새가 나는 방송

기다리기도 전에 가버린 세상처럼

어느새 아들은 나를 싫어하고

정말 있기나 있었나 싶은

군산 서해방송

 

 

 

  * 군산에서 서해 어민들을 위한 방송을 내보내다 80년대 한국방송공사로 통폐합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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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창만 1961년 전북 임실 출생. 1988년 『시문학』 등단.

 

 

                                                 출처 : 『現代文學』 2010년 11월호, 120~121쪽.

 

 

 

  호롱불, 램프불에 쓸 석유 사러 가던 날에나 그 산 너머에서 인편으로 듣고 오던 사람 사는 이야기.

  우선 배가 고파서, 조그만 눈 반짝거리던 그 쥐새끼들이 밉고,

  쇠죽 끓이고 염소 풀 먹이는 일 말고는 할 일도 별로 없던

  암울하던 시절에,

                  아,

  그 산골짜기까지 들려와 주던 라디오 방송.

  그 나날처럼 가늘게 들려오던 라디오 방송.

 

  이제 세월이 흘러 먹고 입는 일 아무 걱정 없음에도

  차라리 그 날 그 곤궁함이 자꾸 생각 나고 그리워져서

  지금에라도 어디에 버려져 있을 그 트랜지스터 라디오 찾아 들어보면

  그 날 그 방송들이 들려올 것 같은데,

  이미 나는 젊지도 않고,

  우리에게 그 방송을 듣던 시절이 있기나 있었는지……

  다 잊으며 지내는 이 나날들을 "행복하다" 할 수나 있을는지……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는지……

 

  심창만 시인의 '군산 서해방송'이, 아련한 모습으로 그 모든 것들을 되살려 줍니다.

 

 

 

  P.S. 비가 이렇게 오는 건 첨 봤습니다. "국지성 호우가 내린다." 그런 표현만으로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두들 잘 지내시기 기원합니다.                                              

 

                                                               - 2011.7.20. 빗소리만 들리는 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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