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밥
최 준
말로 자라는 아이와
밥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밥 먹은 아이는 엄마에게 말을 뱉어내고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밥이 만드는 말을
하루 세 번씩 하얗게 씻어 안치는 엄마
어제는 공룡을 만든 아이가
오늘은 나무를 만들고
하늘을 만들고
새를 만든다
아가야 넌 언제 세상을 다 만들래
엄마는 참 오래도 기다리는구나
대견하구나 이 많은 말들을
한 숟갈에 퍼 담다니!
엄마의 말을 다 먹으면
더 이상 엄마가 없을 아이
아이에게 다 먹이면
아이를 영영 잃어버릴 엄마가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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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준 1963년 강원도 정선 출생. 1984년 『월간문학』과 1990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개』 『나 없는 세상에 던진다』 『뿔라부안라뚜 해안의 고양이』 등.
* 출처 : 『現代文學』 2010년 10월호, 174~175쪽.
"밥을 먹는다"에 이어 그 의미와 행복감이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 '더 읽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식탁에 마주 앉아/밥을 먹는다" 그렇게 끝나는 걸 보면서도 속은 것 같은, 아니면 더 먹었으면 싶을 때처럼 벌써 끝난 얘기에 아쉬움을 느낀다.
엄마는 아이에게 밥을 먹인다. 맹목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밥에 온 우주를 담는다. 그러기에 밥을 받아 먹는 아이는 공룡을 만들다가 나무를 만들게 되고 하늘을 만들게 되고 새를 만들게 된다.
그 밥 속에 엄마의 기원이 들어 있다. 아이는 그 말, 그 기원을 먹는다.
그런 세월이 너무나 길 것 같고(그만큼 길다면야 서로 얼마나 좋을까), 언제 이 세상을 다 이해하게 될까 싶지만, 엄마는 너무나 오래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온 세상을 그 밥그릇에 다 담게 되고 만다.
그리하여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나고, 엄마도 아이 곁을 떠나게 된다. 서로가 영영 떠나게 된다.
그 아이와 엄마가 지금은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인위적으로 그 인연을 끊는 일은 얼마나 나쁜 일인가.
어느 쪽이든 일찍 떠나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쨌든 그 사이란, 그 인연이란 얼마나 애틋하고 그리운 것인가.
지금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아이와 그걸 바라보는 엄마, 혹은 둘이서 밥을 먹는 엄마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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