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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추인「삶의 가운데」

by 답설재 2011. 6. 1.

 

 삶의 가운데

 

 

                                               김추인

 

 

그런 날이 있다

사는 날이 다 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추운 때가 있다

 

신발의 흙을 떤다든가

발을 한 번 굴러 본다든가

하는 일이 다 헛일만 같아지고

내가 하얀 백지로 사위어

몇 번인지 왔을 언덕을 또 떠나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두고 온 이승처럼 돌아보는 때가 있다

 

살아서도 죽은 것만 같은

그렇게 사무치도록

외진 혼자인 때가 있다

 

 

 

 

교대역 스크린도어에서 봤습니다.

인터넷에서 뒤져봤더니 맞춤법이나 줄바꿈이 제각각이어서, 이렇게 옮겨놓는 것조차 실례가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시인이나 음악가, 화가 같은 사람들이 앞에 있다면 그렇게 하기가 난처하겠지만, 편안하게 얘기해도 좋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좀 잘난 척해도 된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를 좀 위로해 주기도 해야 그렇게 잘난 척하는 것을 양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공식대로 오래 기억되기만을 희망한다면, 혹은 거의 혼자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만 내놓는다면 잘난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그런 날이 있다 / 사는 날이 다 별 것도 아닌데 / 그렇게 추운 때가 있다'

 

나만 그런가 싶었던 토요일 오후 교대 전철역,

그곳에서 <삶의 가운데>를 읽은 사람들 중에는 심오한 사고를 거치지 않고도 잠깐 바람처럼 스치는 위로를 받는 일이 참 흔할 것 같기도 해서, 김추인 시인이 참 좋아졌습니다. 곧 그의 시집을 찾아봐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또 품절되었기 십상이겠지요.

 

덧붙이면 '그런 날이 있다'기보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그런 날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나마 곧 '삶의 가운데'를 지나,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게 되는, 저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두고 온 이승처럼 돌아보는 때', 어쩌면 마지막으로 되돌아보는 그런 때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난한 세월 또한 모두 그리움이 될 것입니다. 그 그리움은 눈물보다 진하여, 드디어 아무것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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