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文學』 2010년 10월호에서 단편 「강변마을」(전경린)을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그 소설은, 당장 제 친구 블로그 『강변 이야기』가 생각나게 했습니다. 요즘은 다른 매체들의 발달로 주춤한 느낌이지만 블로그(blog) 운영으로 생계를 삼아도 되겠다 싶은 블로거(blogger)를 더러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윤을 추구하는 '브로커(거간, 중개인, 중개상인, 혹은 정말로 더러 사기성이 있는 거간꾼)'도 있고, 이렇게 블로그에 매달려서 먹고 살기는 뭘 먹고 사나 싶은 '순수파' 블로거도 있습니다. 물론 삶의 향기를 전해주는 블로거, 잡기로, 혹은 무슨 캠페인 같은 걸로, 세상의 진기하거나 잡다한 자료를 구해서 보여주는 일로, 소일을 하거나, 낙을 삼거나, 이것 좀 보라고 강요하다시피 해서 남을 괴롭히거나……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강변 이야기』에 가보면 아래에 보는 「풀잎에게」 같은 작품들이 수두룩 합니다. 나는 이 '그림'들을 들여다봅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림 아래에 붙여 놓은 시 한 편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더 정성들이는 것은 '그림'을 보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고마워하고 미안해 합니다. 그 고마움이나 미안함은 음악가나 화가, 시인, 소설가 같은 사람에게는 대체로 그렇습니다.
전경린 작가는 이 강가 어느 마을에서 썼을 것 같은 소설을 보여주었습니다.
"조심해야 해."
외삼촌이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외삼촌은 나를 안고 그의 친구들은 오빠를 목마 태우고 걸어 들어갔다. 강물이 가슴까지 올라왔을 때 두려움이 몰려왔다. 외삼촌은 나를 돌려 안아 목마를 태웠다. 나는 외삼촌의 목을 두 팔로 고리처럼 걸어 잡았다. 그곳에서 보는 강물은 끝없이 길고 막막하게 넓고 물결은 무겁고 흐름은 빨랐다. 물결이 목까지 올라왔을 때 외삼촌의 몸이 균형을 잃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외삼촌이 몸을 엎드리며 수영을 시작했다. 나는 그의 목을 잡고 등에 올라붙어 함께 엎드렸다. 외삼촌은 힘차게 몸을 저었지만 아래로 마구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머리 밑에 한기가 돌며 등에 진저리가 지나갔다. 외삼촌은 아래로 흘러가며 헤엄을 쳐 강을 비스듬히 잘라 건넜다. 강을 건너 다른 편 강변에 앉았을 때 오빠도 나도 침묵에 빠졌다. 공포에 빠진 것인지 감동한 것인지 감사한 것인지, 슬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몸 안에 강물이 가득 밀려 들어온 것만 같았고 뭔가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이 허전하기도 했다.
다시 도강을 할 때는 몸을 미는 크고 높고 살찐 물살도 편안했다. 물살은 수없이 많은 부드러운 몸뚱이들처럼 나를 안았다가 팔을 풀고는 흘러 내려갔다. 외삼촌은 팔로 내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내 허벅지의 부드러운 살을 안고 있었다. 강물은 외삼촌의 허리까지 닿았다가 가슴까지 닿았다. 나는 두 팔로 외삼촌의 목을 꼭 안았다. 외삼촌의 가슴에서 산이 땀을 흘릴 때 나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외삼촌의 왼손이 허벅지를 지나 천천히 가운데로 다가왔다. 점점 더 가운데로…… 나는 얼굴을 들고 외삼촌의 눈을 바라보았다. 외삼촌은 표정의 변화 없이 내 눈을 마주 보았다. 나는 계속 외삼촌의 눈을 쳐다보았다. 팬티 아래까지 다가온 외삼촌의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돌려 안으며 등에 올렸다. 나는 몸을 펴고 등 위에 엎드렸다. 우리는 물결을 따라 흘러내려 가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내 두 팔은 고리처럼 외삼촌의 목에 걸려 있었다.
수심이 깊은 가운데를 빠져나가 조금 기우뚱거리다가 몸을 세우고 걷기 시작했을 때, 물가의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어수선하게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가 물에 빠진 것 같았다.
(전경린, 「강변 마을」, 부분)
누구에게나 유년은 현재의 삶보다는 정갈했을 것입니다. 「강변마을」은, 제가 읽기로는 그 정갈함에 대한 추억입니다. 누구나 그 강을 그렇게 한두 번 혹은 여러 번 건너지 않고는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득함으로, 슬픔으로, 회한으로, 그리움으로……, 온갖 상념으로 떠오르는 강입니다. (혹 외삼촌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싶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핏줄이 닿은 외삼촌도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외삼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래가 뜨거워서 걷기 힘들지?"
외삼촌은 아까부터 잠든 은주를 업고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그맣게 말했다.
"외삼촌 난 뜨거운 모래가 좋아."
외삼촌은 하하 웃었다. 나는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좋았다. 사람들이 웃고 나면 더 예뻐지곤 했다.
"이렇게 뜨거운 모래가 좋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이 보고 싶어서 울었다고 하더니, 어머니 말대로 너는 참 예쁜 아이구나."
외삼촌이 말했다. 나는 수줍어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실은 외삼촌이 좋아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모래가 좋다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전경린, 「강변 마을」, 부분)
오빠와 나는 또 강에 가겠다고 졸라댔지만 은주가 물에 빠진 일을 아는 외할머니는 엄하게 금지했다. 물의 따스함과 서늘함과 물결에 부딪쳐 반사하는 햇볕과 물속의 깊은 그늘…… 낮잠이 들 때마다 나는 강물 속에서 출렁거렸다. 두툼하게 살이 오른 물결이 몸을 밀기도 하고 몸을 감기도 하고 혹은 몸을 누르기도 했다. 어느 때는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가기도 하고 아래로 끌려 내려가기도 했다. 흙과 물고기와 수초 냄새가 아득하게 섞인 흐린 강물 냄새가 물귀신처럼 나를 끌고 갔다. 강을 건넌 뒤로 나는 땅 아래에 더 낮은 바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자다가도 방바닥 아래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나는 이제 땅의 밋밋한 바닥에 만족 못하는 사람이 되어 낮잠에서 깨면 강에 가겠다고 훌쩍거렸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은애가 강에 상사병이 걸렸구나…… 이 동네에도 어느 해 여름에 그런 병에 걸린 남정네가 있었단다. 그 남정네는 매일 강에 가서 이 강변에서 저 강변으로 건너다녔지. 매일매일 강에 들어가더니 태풍이 온 날도 갔단다. 물이 불어난 폭우 속에서도 도강을 했어. 그러다가 떠내려가 버렸단다. 어디까지 떠내려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 바다까지 갔을 거야…… 그래도 가고 싶으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전경린, 「강변 마을」, 부분)
그 강변마을은 이제 추억일 뿐 돌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너무나 철저하여 감히 되돌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제한구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그 '강변마을'을 잊어버리고, 혹은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 '강변마을'이 정말로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워 환상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그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버린 곳이 '강변마을'일 것입니다.
다음 해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나는 강변마을에 가겠다고 가방을 쌌다. 엄마는 묵묵부답으로 버티다가 조르는 나를 대문 밖으로 쫓아냈다. 나는 그날 그늘 한 점 없는 불볕 속을 오래 걸어 다녔다. 오빠는 어느 날 부턴가 강변마을에 대해 자물통을 채우듯 입을 굳게 다물더니 과묵해졌고 설탕물을 많이 먹어 앞니가 썩기 시작한 동생은 이내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셜탕물을 금지당한 동생들은 더 많은 비눗방울을 불어 날렸다. 나는 그 여름의 기억을 몸속에 가둔 채 차차 고독해졌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 자신이 망상병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갈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있었던 일이었고, 어디에도 입구가 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그 일은 추억조차 되지 못하고 굳게 잠긴 커다란 자물통으로만 남은 셈이었다. 그러나 어쩌다가, 일 년에 몇 번 낮잠이 들 때면, 매듭이 스르르 풀리듯 내 몸은 강물 속으로 흘러갔다. 땅바닥보다 더 낮은 바닥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의 표면은 따스하지만 물속은 서늘하고 깊다. 그 전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강물은 긴 척추를 휘며 근육이 단단한 물결로 내 몸을 밀기도 하고 감기도 하고 혹은 누르기도 하고 스스로의 부력으로 들어올리기도 하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나는 속수무책 떠내려가고 아래로 끌려 내려간다. 강물이 얼굴을 덮고 햇볕과 흙과 물고기와 수초의 냄새가 다리 사이를 지나간다. 여기가 끝이 아니야, 속삭이며 까마득히 낮은 바닥으로 나를 끌어내리는 강, 더 낮은 바닥, 더 낮은 바닥까지…….
그리고 잠이 깨면 대각선을 그으며 아득히 밀려난 어느 낯선 강변이다. 나는 시간의 입자들이 잔광처럼 흩어지는 강변에 앉아 그해 여름이 비눗방울에 실려 둥둥 떠가는 것을 바라본다.
(전경린, 「강변 마을」, 부분)
이 소설 속의 오빠는 엄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외할머니댁은 무슨 외할머니댁! 그 집은 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그 여자네 집이야. 그 할머니는 그 여편네의 어머니란 말이야. 다시는 외할머니니 외삼촌이니 뭐니 하지 마라. 입밖에도 내지 마라!"
주인공은 어머니로부터 그 말을 직접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강변마을을 아름답게 기억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 지나간 일이니까 어쩌면 그것조차 영롱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흔적이 다 그렇게 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경린 1963년 경남 함안 출생. 경남대 독문과 졸업. 1995년 『동아일보』 등단.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바닷가 마지막 집』『물의 정거장』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황진이』『엄마의 집』『풀밭위의 식사』 등.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 소설상> <21세기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
그 『강변 이야기』가 며칠째 조용했습니다.
블로그 『강변 이야기』와 단편 「강변 마을」이 아름답기로나 의미롭기로나 흡사하여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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