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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by 답설재 2011. 6. 13.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마저 꺼버려서 서재에 와 앉으면 세상이 적막해진다.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릴 적 그 시골 마을보다 더 조용해진다. '이러면서 죽어가는 거겠지'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이 적막을 이렇게 좋아한다. 이 적막을 견디기 어려워하면서도 늘 그리워한다.

 

'이러면서 죽어가는 거겠지.'

그런데도 아직 마음 속에는 내가 교사였다는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흔히 그 교사의 습성대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신문을 볼 때도 교육에 관한 내용이면 귀를 기울이고 본문을 읽어보게 된다. "넌 이제 교사가 아니다!" 하고 퇴임을 시켰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세상에 대해 미안하게 혹은 쑥스럽게 여겨야 할 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므로 좀 기다려 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 저녁에는, 한 자라도 더 가르쳐 보려고 아이들을 혹독하게 다룬 일이 생각났다. 숙제를 '죽어라' 해오지 않아서 방과 후에 남겨 아예 숙제를 하고 집에 가게 한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 애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원망하지도 않고 손자가 그 숙제를 다 하도록 기다려주었다.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했는데, 아이는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든 해찰을 다하면서 내가 "그냥 가라!"고 하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나는 한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게 늘 좋은 낯으로 인사를 해주었지만,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나는 정말로 제대로 가르쳤는가.'

'나는 그 애들에게 가르칠 것을 가르쳤는가.'

 

 

 

 

학교는, 두 가지 외에는 그리 중요할 것이 없는 곳이다. 읽는 것과 체험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뜀틀도 읽으면 그만이다.

'저런 모양이구나.'

'저런 구조를 가지고 있구나.'

'저기 걸터 앉으려면 저렇게 하고, 뛰어넘으려면 저렇게 하는구나.'

'까짓거 나도 한번 뛰어넘어볼까?'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어떤 기능을 가져야 하는가에 앞서 어떤 마음가짐, 어떤 용기를 가져야 하는지부터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6학년이라면 5단은 뛰어넘어야 한다!"고 결정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다리가 고장난, 장애가 있는 경우는 어떻게 하겠는가?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제각각 온갖 장애를 갖고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짓이 아닌가.

 

 

 

 

그럼에도, 읽기와 체험하기 외에는 할일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도, 학교는 지금 얼마나 바쁜가.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고 체험을 시키는 일이 교육이라면 그렇게 바쁠 것도 없지만, 교사들은 오늘도 얼마나 분주하고 덩달아 아이들은 또 얼마나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학원 강사들은 강의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교재연구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데, 교사들은 교재연구를 할 겨를도 없는 날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하면서 무슨 수로 공교육이 사교육을 이겨야 한다는 것인가.

 

섭섭한 단언(斷言)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교육개혁!" "교육혁신!"을 외쳐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리 시원한 답, 시원한 길을 찾지 못할 것 같은 것이 우리 교육의 실상이다.

더 섭섭한 말일지 모르지만, 바빠서 좋은 사람은 거의 대부분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교사들은 오늘도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세상이 이렇게 적막한지도 모른 채 다시 내일을 향해 피곤한 몸을 누이고 싶겠지만, 우리 교육이 왜 그리 분주한지, 우리 교육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는 교사들은 왜 그렇게 피곤한지에 대해 분명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중앙일보, 2011.4.27.18면.

 

 

 

 

"이 학교도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비판을 하고 싶습니까?그러면 적어도 "신문에 난 내용처럼 교육하면 좋다"는 얘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지금 그걸 바란다는 얘기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쓸데없는 일로 분주하면 곧 망할 징조를 보이는 것입니다."마음대로 하십시오. 잘만 가르치십시오. 학교에 보내든 학원에 보내든,집에서 가르치든 좋을대로 하십시오. 잘만 가르쳐 주시고그 교육에 든 비용을 청구하시면 국가가 전부 책임을 지겠습니다."교육부장관이 나서서 그렇게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오늘도 그 생각을 합니다.그날 우리 국민들은 세 가지, 아니 여러 가지 방법 중 어느 방법을 선호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