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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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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가르쳐주는 선생님

by 답설재 2011. 7. 10.

 

 

우리의 '표준화' 시험은 이렇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신문사는 '표준화' 시험 결과를 신문에 게재하여 다른 학교들과 비교한다. 학교 관계자는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린다. 이 시험 점수는 학교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기준 미달 학교는 예산이 삭감되거나 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이 시험 결과는 정확하지가 않다. 어떤 경향을 강조해서 보여줄 수도 있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교육자라면 이미 누구나 그런 경향은 파악하고 있다.

 

주에서 주관하는 시험은 별도의 감독 없이 진행된다. 보통 감독관이 따로 나오지 않고 학생과 교사만 있는 교실에서 시험이 치러진다.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 뒤에서 시험지를 지켜보다가 은근히 (헛기침을 하며) 혹은 노골적으로 (답을 손가락으로 짚거나 속삭여서) 답을 가르쳐준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 제한이 있는 시험은 시간을 더 주기도 한다.

 

LA의 호바트 불르바 초등학교 교사 레이프 에스퀴스가 쓴 『위대한 수업』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이야기는 읽기/쓰기 시험을 치르기 전에 읽기/쓰기 지도교사가 선생님들에게 시험지를 미리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어떤 문제가 시험에 출제될지 말해줄 수 있도록 메모하게 한다는 고발로 이어진다.

'별 희한한 학교도 있구나' 하면서도 가볍게 넘겼었다. 그 고발이 글의 목적은 아니었으므로 자신의 교육관을 강조하려고 사실을 다소 확대하거나 왜곡해서 표현하기도 했을 거라는 생각이 없지도 않았다.

 

 

 

그 고발이 생생한 사실이라는 최근의 신문기사를 보고** 그 책의 내용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산 때문에…' 美 성적 조작 '발칵'

사상 최대 규모의 시험 점수 조작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예산 축소로 수업 일수를 줄이는 학교가 속출하는 등 미국 교육계가 총체적 난국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178명의 교장과 교사가 연루된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험 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조지아주 학력평가고사(CRCT)를 치르면서 답안을 고치는 방식으로 점수를 조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178명의 교사 중 82명은 부정을 인정했다.

미 언론은 이번 사건이 경쟁 위주의 교육 환경에 대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험 점수를 바탕으로 교장의 인사고과는 물론 교사들의 인센티브를 결정하는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략)…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학생의 수업 일수가 적은 것을 개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재정난에 처한 미국의 각 주와 지방자치단체가 학생들의 수업일수를 계속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전역에서 수천 개의 각급 학교들이 여름학교 로그램을 없애거나 주 4일 수업만 하면서 이 기간 내에 기존 과목 수업을 끼워 넣는 등의 방식으로 수업일수를 줄이고 있다.

                                                                                                     워싱턴 천영식 특파원 kkachi@

 

 

'미국이라고 뭐 별 수 있겠나.'

'어느 나라고 개판치는 학교는 있겠지.'

'경쟁을 우위로 하는 시책은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인가?'

'미국 공교육 개혁의 기수라는 평가를 받아온 워싱턴 DC 교육감 미셸 리는 지난해 말의 교원 대거 퇴출에 이어 얼마 전에도 교사와 교육공무원들을 무더기로 퇴출시켰다는 소식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도 이런 비리가 있기 마련이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버젓이 전개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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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에는 교육과학부에서 실시한 전국 초등학교 6학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시골의 어느 지역교육지원청 내에서는 사회, 과학, 영어 등 3개 교과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단 1명도 없고, 국어와 수학 등 나머지 2개 교과에서도 미달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는 결과가 대서특필되었다. 이는 서울의 강남보다 뛰어난 결과라는 교육부의 안내와 함께 신문들은 기적이라고 맞장구를 쳤는데, 그 이튿날 신문에는 당장 거짓이 들통났다는 기사가 실렸다(신문들은 반성할 필요가 없나?).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답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다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렇게 한 후에도 그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그게 얼마나 미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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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프 에스퀴스 지음/박인균 옮김, 『에스퀴스 선생님의 위대한 수업-평범한 아이를 특별한 아이로 바꾸는 기적의 교육법』(추수밭, 2010, 1판 6쇄), 55쪽.
**『문화일보』2011.7.7,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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