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졸과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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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前 강원도지사의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조선일보 2011년 5월 21일(토) 주말 부록 Why 1~2면, 제목 "당분간은 시련의 계절/운명이라면 또 기회 오겠죠"(「강훈 기자의 와일드 터치」, nukus@chosun.com)
교육적으로 인상 깊은 문답이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은?
"아버지가 공무원이었다.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연극 하는데 만날 '포졸'만 시키더라. 나중에 어머니가 정미소를 차려 집이 잘살게 됐더니 여동생은 '왕비'를 하더라. 중학교 때 도회지(원주)로 전학 갔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무슨 책이 그렇게 많으냐. 문화적 충격이 컸다. 매주 그 집에서 책 빌려 서너 권씩 읽었다."
아, 정말…… 아직도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언제까지 이런 기억들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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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가 떠오릅니다.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졸저(拙著)에서 이미 다 털어놓은 얘기지만,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제가 남보다 암기력이 뛰어나다고 6·25사변(6·25전쟁)을 주제로 한 웅변을 시킨 일이 있습니다.
저는 그 원고를 그날 오후 두세 시간만에 당장 다 외웠지만, 며칠 후 전교생과 온 선생님이 다 모인 강당에서 그 '웅변'이란 걸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눈물을 흘렸고, 처음에는 감격에 겨워 우는 줄 알았던 그 청중들이 시종일관 눈물을 흘리는 저를 보고 어이없어하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심한 고백이지만 곤혹스럽고 부끄럽고 쑥스러워 흘린 눈물인 줄을 그들은 끝내 몰랐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교육적으로도 할 만한 놈을 가려서 시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일은 그때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학예회 때의 연극이나 하다못해 국어 시간의 책 읽기에서나 늘 본의 아니게 화랑 관창이나 한석봉, 맹자 같은 주인공 역할을 맡았고, 그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한 배역이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어처구이없는 일이었고, 다른 아이들에겐 그만큼 억울한 처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결코 집안 형편이 좋은 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마저 털어 놓는다면 다른 아이들이 점심을 굶을 때 저도 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쓰러져 굶어죽지 않은 것 정도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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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에겐 '포졸'만 시키고 잘 사는 집 아니는 '왕비'를 시키더라는 얘기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전의 우리 교육은 그런 비판과 비난을 받아도 설명이나 변명을 늘어 놓기가 난처한 면이 없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다만 이제는 정말로 그런 유치한 비판, 비난은 받지 않게 되기를 기대하고 싶을 뿐입니다. 못사는 집 아이는 포졸, 잘 사는 집 아니는 왕비라니, 말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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