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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독서교육, "화이팅!"

by 답설재 2011. 5. 5.

 



 

 

독서교육, "화이팅!"

 

 

 

 

  '전체 학교에 도서관 전담 교사를 두자'는 건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무책임한 입법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습니다.1

 

  '포퓰리즘'이란 '대중영합주의'랍니다.2 그렇다면 전 학교에 도서관 전담 교사를 두자는 법안을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보는 관점을 가진 사람의 교육관은, 아마 교육의 핵심 활동을 지식주입식 교육이라고 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이란 담임교사 혹은 교과별 교사가 학생들에게 설명을 잘 해주는 것이고, 학생들은 조용히 그 설명을 경청하게 하고, 누가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겨루게 하는 것이다, 교육을 그렇게 바라본다면 "도서관에 전담 교사를 두는 것이 뭐 그리 급한 일이냐"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교육자 중에도 그런 교육관을 가진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건 체험교육, 창의성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식주입식 교육의 근간이 무너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현장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체험교육이나 창의성교육에 관해 얘기하면 "그래, 그렇긴 해도 우선 기본적인 것은 외워 두어야 그 바탕에서 사고력이 생기고 창의성이 생길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국어, 도덕, 사회, 과학, 수학, 영어, 체육, 음악, 미술, 실과(기술·가정)를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혹은 코피가 터지도록 외우다가 스트레스를 좀 해소할 필요가 있을 때 잠깐 즐겨도 되는 여가활동이 독서라고 여기는 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동화책 읽기, 부모나 교사 몰래 소설 읽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아니, 그럼 독서가 그런 여가활동이 아니란 말이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보다는 좀 더 깊은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독서는 여가활동이나 취미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교과과정으로 보면 문법이나 화법, 문학처럼 국어(國語) 교과의 여러 영역 중 한 가지"라고 해석할 지도 모릅니다.

 

 

 

  독서는 모든 교육활동, 혹은 모든 학습의 기본입니다. 교사들은 결국 학생들에게 "읽는" 공부를 시키는 사람들이며,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다 현명하게 읽는 공부를 시키는 곳"입니다. 체육시간에 뜀틀을 넘어보거나 철봉에 매달려보는 활동도 "그 체육기구를 읽는 공부"입니다.

  실제로 학교의 모든 활동은 독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깊이 있게 경험시키는 최선의 방법이 독서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초등학교 5학년 2반 담임교사 혹은 중학교 2학년 과학교사와 도서관 전담교사 간의 이런 대화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 선생님, 이 아이에게 만유인력에 관한 책 좀 두어 권 찾아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에게 생활과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깨닫게 하는 책 좀 권장해 주십시오."

  "이 아이가 곤충 중에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것도 있긴 하지만, 아주 무서운 것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십시오."

  ……

 

  그렇다면 학교도서관에 겨우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임시직 사서 한 명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 한심하고, 교육경력이 교감 혹은 교장 정도 되는 교원과 사서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야 제격일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이라면 우리나라는 경제수준은 상당하다 할지 모르지만 교육수준 혹은 문화수준은 한참 더 기다려야 할 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국어, 도덕, 사회, 국사, 과학, 체육, 음악, 미술, 기술·가정, 보건, 영양교사는 있는데, 독서지도교사는 없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때 각 학교의 도서관을 가능한 한 건물 1층, 그것도 중앙에 자리잡게 하라는 시책이 강조된 적이 있었는데, 그런 관점은 상당히 수준 높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결국 아이들을 줄 맞추어 앉혀 놓고 조용한 가운데 시종일관 조리있게 설명해주는 유치하고 한심한 교육방법이 사라질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활동1> <활동2> <활동3>을 제 마음대로 다 정해 놓고 아이들을 일사불란하게 그쪽으로 몰고가는 수업방식도 종말을 고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날 현재와 같은 수능고사도 함께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참으로 효율적인 교육이란 지식주입식교육의 저 건너편에 위치한 개별학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아이들 중 몇 명은 귀찮게 여겨야 합니까? 수업을 따라오지도 못하고, 오히려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교육은 그런 아이를 대상으로 해야 합니다. 한 교실에 6,70명이 들어앉아 있어 할 수 없이 주입식으로 가르치던 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충 가르쳐놓고 '우수수' 혹은 몇 명은 떨어뜨리는 짓은 이제 곧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이 귀해서 한 명 한 명 그 적성과 소질, 능력에 따라 모두 성공시키는 교육을 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학교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아니, 그런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날에 학교가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면 지도자는 이렇게 말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국민 여러분, 학교든 학원이든 홈스쿨링이든 다 좋습니다. 잘만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국가가 책임지고 그 비용을 지급해 드리렜습니다."

 

 

 

  그런 날이라면(개별학습이 판을 치는 날이라면), 아마도 독서를 중심에 놓는 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 독서를 지도하는 교사보다 더 좋은 교육자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 국가 교육과정 편제표를 보면 국어, 도덕, 사회…… 그런 것들의 맨 앞에 독서가 자리잡고, 그것도 가장 많은 시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도서관 전담교사'들은 지금은 거의 모두 계약직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한 해 한 해 새로운 계약을 맺고 근무하고 있지만, 잘 참고 견디면서, 그러나 공부와 연구를 많이 하며 그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식주입식 교육으로 악명 높은 나라니까 어쩌면 그날을 세계적으로 가장 빨리 맞이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가장 형편없는 부분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당연하니까요. 사실은 그게 저의 개인적인 희망이고 기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결코 그리 허술한 나라가 아닌 것이 분명하니까요.


  도서관 전담교사, 홧팅!

  아니, 독서교육, 홧팅!!!

 

 

 

 

 

 

 

 

  추신 : 어린이날입니다. 고생스레 어디를 다녀와야 부모 구실을 한 것이고, 하다못해 놀이기구라도 한번 태워줘야 하는 날입니까?

  교보문고는 어떻습니까? 하다못해 동네의 소박한 서점이어도 얼마든지 좋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 데리고 가서 "네 마음대로 몇 권만 골라라" 하신다면, 평생 잊지 못할 어린이날이 될 것입니다. 단 몇 만 원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고르는 정말로 '사치스런' 한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멋진 추억이 되고 멋진 교육, 멋진 부모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 한스럽습니다.







  1. 조선일보, 2011.4.26. B1(조선경제) [본문으로]
  2. 포퓰리즘 [populism]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대중영합주의라고도 한다. 대중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을 동원하는 정치체제로, 대중적 지지를 권력유지의 기반으로 삼는다. 1890년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탄생한 인민당이 농민과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정책을 표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다.(출처:시사상식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