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독(毒)을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알고 보니까 장미향수였다면, 고전적이면서도 교훈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또 장미향수를 받은 사람에게는 감동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장미향수를 주었으므로 상대방도 내게 장미향수를 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독이었다", 그런 일도 있을 것 같다. 아니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지난번에(아, 이런... 이미 3개월 전이네!) 『우리에게도 더 좋은 날이 되었네』를 얘기한 그 음반에는 「당신이 마실 장미향수를 주겠네」라고 표시된 것이, 다른 음반을 찾아봤더니「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네」로 표시되어 있는 걸 봤다.
① '당신이 마실 장미향수를 주겠네.'
② '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네.'
어느 것이 맞는지 노래를 들어봐도 알 수가 없다. 우리의 국어도 아니지만 영어도 아니기 때문이다.
분위기로 짐작할 수도 있다면, 그 분위기는 단연 ②번 즉, '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네' 쪽이다. 하기야 무슨 향수를 마실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향기로워도 냄새를 맡는 것과 마시는 것은 다르니까. 이것보다 더 실제적인 분석은 CD 케이스가 작으니까 '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네.'라고 길게 쓰기보다는 '당신이 마실 장미향수를 주겠네' 하고 마는 게 더 편할 것은 당연하다.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아그네스 발차의 우수어린 분위기가 이 노래에 이르러서는 돌연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처럼 바뀌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다!" "그렇게 잘 해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다!"
가슴아픈 일이다. 남에게 독을 주는 일도 그렇지만, 내게 장미향수를 주는 줄 알았던 이가 독을 주는 이로 변하는 걸 지켜보는 일도 가슴아픈 일이다. 그 독은 치명적이어서 그게 치유할 수 없는 병이 되고, 그 상처로 서서히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승에서 그런 일도 한번 겪어보는 것이 더 나은 걸까?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등급 학생들은 스스로도 잘해낼 수 있네 (0) | 2011.05.09 |
---|---|
오바마, 어디 앉아 있나요? (0) | 2011.05.06 |
가련한 우리말 (0) | 2011.04.19 |
독서, 너만은! (0) | 2011.04.17 |
봄! 기적(奇跡) (0) | 2011.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