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독서, 너만은!

by 답설재 2011. 4. 17.

 

 

 

독서, 너만은!

 

 

 

 

2011.3.22.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아이입니다. ………….

 

 

 

  책에 대해 말할 때 흔히 하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왜 읽는가?"

  "왜 읽어야 하는가?"

 

  '왜 읽는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가령 이런 대답들입니다.

  "재미있어서"

  "호기심 때문에"

  "심심해서"

  "내가 책을 읽으면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시험공부만 하니까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아서"

  "아내(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

 

  '왜 읽어야 하는가?'도 생각해 보십시오. 질문은 조금만 바뀌었지만 까칠해져서 답하기가 쉽지도 않고, 답하는 재미도 없어집니다.

  "책속에 길이 있다고 하니까"

  "이 교과서를 다 외워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해야 하는 일에 도움이 되니까"

  "잘난 체할 수 있으니까"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진학을 하고 싶어서"

  …………

 

 

  "독서에는 오락적인 요소도 있고 실용적인 요소도 있다"

  "여가에 책을 읽기도 하지만 살기 위해 읽기도 한다"

  "독서가 취미 활동이냐 평생학습의 요소냐 그것부터 따져야 한다"……

  그따위 말은 듣기도 싫고 짜증스럽습니다. 생활의 일부인데 일년에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사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이력서 '취미'란에 '독서'를 써넣어도 좋다고 허락하십시오. 

 

  다시 돌아가 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중, 어느 쪽이 더 진정성을 지닌 대답들입니까? 아니, 두 가지 물음 중 한 가지에 대답해 달라고 한다면 어느 물음에 답하고 싶습니까?

 

  저의 경우에는 돈이 궁해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돈이나 실컷 벌어봤으면 같은 건 염두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혹 "이제 너는 죽을 때가 되었다"고 할까봐 그게 걱정스럽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시간에도 몰래 책을 읽었고, 쑥스럽지만 살아오면서 시간만 나면 읽었는데도 그렇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몇 권 읽지도 못했고, 지금은 좀 읽으면 머리가 아파서 건강이 나아지기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모으는 건 욕심이겠지만 나중에 꼭 읽어야 할 책을 모아두기도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독서를 계획적으로 하면 대학진학에 유리하도록 한 정책을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냥 두는 게 좋을 걸 그랬다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독서, 너머저도!'

 

  공연한 우려가 아닙니다. 한 신문의 기사에 이런 내용이 보입니다.1 이런 기사의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순동 교원 교육연구소장은 "인문경시에서 독서량은 수상실적과 비견될 만큼 중요하다. 초등학생은 독서계획표를 통한 독서습관과 다독으로, 중학생은 진학과 관련된 학습연계 독서와 자신만의 철학을 정리·표출할 수 있는 명사 에세이 등을 통해, 고등학생은 전공과 직업에 관련된 전문적인 독서를 통해 전공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표출해야 한다"며 맞춤 독서로 사고력을 증진시킬 것을 주문했다.

 

  웃기는 얘길지 모르지만 '그러면 공부 시간에 몰래 책을 읽었던 그런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일까, 못 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사활동도 진학에 직결되는 실적이 되도록 했을 때 어떤 학부모들은 자녀의 봉사활동 실적을 올려주려고 가짜 증명서를 발급받더라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풍조 때문인지 정부에서도 "무엇을 하면 봉사활동 몇 시간을 인정하겠다"는 시책을 쓰기도 하는데(가령 인터넷으로 인구총조사에 참여하기), 이런 관점에서는 그리 훌륭한 행정은 아닐 것입니다.

  독서에 대해서도 봉사활동 꼴을 연출할까봐 미리 걱정스럽고,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취미활동인 독서까지도 그렇게 될까봐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저 혼자의 바람이라 하더라도 나름대로 간절한 기원입니다.

  '독서, 너만은!'

 

 

 

 

 

 

 

 

 

  1. 조선일보, 2011.4.11. D7, 「'인문 경시'로 사고·논리력 잡고, 입사관 마음도 잡아라」 [본문으로]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당신에게 장미향수를 주었건만 당신은 내게 독을 주었네  (0) 2011.04.24
가련한 우리말  (0) 2011.04.19
봄! 기적(奇跡)  (0) 2011.04.13
"初夜? 이렇게 해보세요"  (0) 2011.04.11
다시 온 봄  (0) 2011.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