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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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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상 마에하라와 우리 교육의 수준

by 답설재 2011. 4. 6.

 

 

 

일본 외상 마에하라와 우리 교육의 수준

 

 

 

  3·11 일본 대지진 나흘 전 신문기사입니다.

  일본의 차기 총리 '0순위'로 꼽히던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이 불고깃집을 경영하는 재일 한국인으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은 데 책임을 지고 외상직을 사임했답니다.

  그가 받은 헌금은 2005년부터 4년간 매년 5만엔(현 환율로 67만원)씩이었고, 더구나 그 재일 한국인은 일본인 이름으로 헌금했다지만, 그게 밝혀지자 그는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간 나오토 총리 관저를 찾아가 1시간 40분 동안 "내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외상직을 사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앞날을 기약하고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 같은 건 다 집어치우고, 아래의 기사 제목에서 '낙마(落馬)'라는 표현은 '하마(下馬)'라고 해야 마에하라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쫓겨나야 '낙마'가 아닐까요?

 

 

 

 

  이 기사를 본 날, 우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검찰에서 조사 중인 정치헌금 문제에 관해 아예 그 조사조차 무위로 끝나게 하려는 듯 정치자금법에 관한 논의를 여야가 '합심해서'(신문에선 '기습처리'라고 했지만, 사전토론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기습처리'라기보다는 '합심해서'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통과시켰다는 기사가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국회의원에게 입법로비를 할 때는 돈을 좀 써도 괜찮도록 하자는 것입니다.1

  그게 언론에 대서특필되자 얼른 법사위원회 등이 나서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겠다고 했고 그렇게 하자고 앞장섰던 사람들은 신중을 기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더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싫습니다.

  걸핏하면 "국민, 국민" 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고 하겠지요? 그럼,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 것일까요? 우리 국민들이 하필 그런 사람들을 골라서 뽑은 것일까요?

 

  선거를 할 때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게 비난이라고 여깁니다. 그 비난을 듣는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다는 뜻입니다. 잘 가려 뽑아봤자 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정치도 좋아진다고, 그게 민주주의라고,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나라 민주정치는 발전 과정에 있다고, 별별 설명을 다 하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비교적' 곧 죽어야 합니다.

 

 

 

 

  일본 정치인들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은 일본의 강점이 아닐까요? 물론, 그렇게 하니까 일본은 걸핏하면 총리가 바뀌고 장관이 물러나고 도대체 어지러울 정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이 가령 법을 잘 지키지도 않았는데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그렇게 해서 또 법을 어기는 나라보다 그 수준이 낮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나라 정치 수준이 일본과 '다른'(자존심을 누르고 '뒤떨어진' 혹은 '한참 뒤떨어진'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육이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답답해서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뽑힙니까? 한 명 한 명을 알아보거나 직접 만나보면 다 똑똑합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사실은 중요한 일로 너무나 분주한 분들이어서 만나기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그게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래도 교육이 잘못 되어서 그런가보다!' 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잘 되었는데 그렇다면 더러 어쩌다가 한두 명이 바보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말리는 의원이 대부분이고, 그러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의원이 대부분이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어쩌다가 한두 명은 바보 같은 생각을 말했다가 당장 '죽사발'이 되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혹 이런 건 아닙니까? 우리는 개별로는 다 똑똑한데 모아놓으면 바보 같게 되고, 일본은 개별로는 저 마에하라처럼 바보 같은데 모아놓으면 똑똑해지는 건 아닙니까? 그게 또 교육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까? 보십시오. 일본인들은 유치원 때부터 절대로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지 않습니까?

  이러나저러나 그렇다면 큰일은 큰일입니다. 교육 때문이라면 더 큰일이고, 그건 정말로 큰일입니다.

 

  일본의 정치 수준이 우리와 다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고, 그런 관점에 따라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한 대안이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어떤 이유보다는 교육이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깊이 생각해서 글을 쓰게 하거나 의사표현을 하게 하거나 토론을 하게 하질 않고, 무엇이든 ○×로 나타내기, ①②③④⑤ 중에서 고르기, (  ) 안에 단답 쓰기가 중심인 이런 교육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학교에서 회의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어렵고, 논술(긴글)쓰기도 강조하지 않는 이런 교육으로 이 나라가 제대로 되겠나? 싶은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교육과정' 기준에는 이미 옛날부터 그런 것들이 다 들어 있는데 그 기준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있다가 그걸 무슨 시책이라고 내어놓는, 다시 말하면 '교육의 근본'인 '교육과정'에 어두운 이런 교육으로는 교육개혁이 이루어지겠나 싶은 것이 제 견해입니다.

 

 

 

 

  이렇게 잘라서 말하면 합리적이지 않지만, 제발 그렇게 혹독한 일제시대를 겪었으므로, 직접적으로 말하면 35년이라는 긴 세월 우리를 지배한, 그 생각을 하면 가졌던 정(情)도 다 달아나버리는 저 일본만큼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무엇으로든 저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 살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중앙일보, 2011.3.7,16면.

 

 

 

  1. 나중에라도 "우리나라 정치가 뭐 어떻기에" 할까봐 그 증거를 남겨둡니다.2011.3.7(월), 문화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은 「또 '그들만의 국회' … 국민 뿔났다」이고, 부제들은 「政資法 '기습처리에 시민단체·네티즌 강력 반발」 「"범법자 옹호집단 전락한 정치권 낙선운동 벌일 것"」이었습니다.그 신문에는 관련 기사도 많았습니다.「"政資法 본회의 통과땐 거부권 행사 검토해야" 정부일각 고강도 대응 주장」(1면)「민생법안 5년째 팽개치고 '내 몫'은 20분만에 '뚝딱'- 與野 세비인상·헌정회 지원 '한마음', 예금자보호법 등 민생은 '이견 때문에…'」(2면)「"면죄부" 역풍에 주춤하는 與野 "법사위서 재론"」(2면)「"어처구니없는 입법권 남용" 분개 - 법원·검찰」(2면)「"기업 후원금 확대 수단 악용" 우려 - 재계」(2면)「'공정사회' 그렇게 외쳤건만… 정치권 역주행에 강경대응 - 대통령 거부권 검토, 정부 일각 제기 왜?」(3면)「"서둘러 처리할 이유 없다 전체회의에 상정 않을 것" 우윤근 법사위원장 통과 안 될 가능성 시사」(3면)「'뻔뻔한 법안 개정' 5인의 국회의원, '지휘-행동'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 "소액 후원금 피해자 양산 우려 개정" 변명」(3면)「'당선 무효' 면죄부도… - 직계존비속 300만원 벌금 때 당선무효 선거법 개정 추진」(3면)「'불법후원금' 의원 13명 주내 소환 시작 - KT링크서 노조서 받은 1억 관련… 檢 "현행법에 근거 수사"」(8면)수다스러워서 이튿날 조간의 기사는 기록해두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신문의 사설에서 이번 일의 개요를 옮깁니다.대한민국 국회는 툭 하면 육박전이 벌어질 정도로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하지만 의원들 이익을 챙기는 데는 언제나 똘똘 뭉친다. 행안위가 이번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상정하여 의결한 것도 딱 그런 모습이다. 여야 의원 54명이 후보자 직계 존비속의 선거법죄로 당선무효가 되는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얼마 전 발의한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앞서 편법 정치자금 수수를 바로잡기 위해 소위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을 수사하여 국회의원 6명을 기소했다. 청목회란 청원경찰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청원경찰 개개인 명의로 건넨 정치자금은 현행 정치자금법에 위배된다. …(후략)… - 매일경제, 2011.3.8.A39. 「국민 우롱하는 政資法 개정 꿈도 꾸지 말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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