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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최현배 선생의 손자

by 답설재 2011. 3. 18.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를 만났습니다. 지난 2월 25일 오후 6시 30분, 프레지던트 호텔 31층 모차르트홀에서 열린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2011년 정기총회에서였습니다.

전직 편수관(編修官)들의 모임인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를 초청한 것입니다.

 

편수관이란 장학관, 교육연구관, 교육연구사, 장학사처럼 전문직의 직렬 중 한 가지이지만, 지금은 그런 직렬을 가진 전문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조직에서 편수국이 사라졌으므로 편수관들도 없어진 것입니다. 편수관들은 '교육과정(敎育課程)' 즉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 특수학교 교육을 위한 학교교육의 교과별 목표와 지도내용, 지도방법, 평가방법 등을 정하고 관리하는 일, 교과서를 편찬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1990년대 초에 편수국 교육연구사로 들어갔을 때는 편수국 직원이 60명이 넘었는데, 1996년 봄 그 편수국이 사라지고 직원 40명 정도의 교육과정정책과가 남아서 그 일을 하게 되었고, 저도 한때 그 부서의 책임자를 맡았었습니다.

 

  

 

 

까마득한 선배부터 후배들에 이르기까지

 

 

 

 

이분들이 바로 외솔 최현배 선생의 가족들입니다.왼쪽은 손자 최홍식 씨(연세대학교 교수), 오른쪽은 자부(며느님) 이혜자 씨(그러니까 최현배 선생의 아들 최신해 씨의 부인)입니다. 이혜자 씨는 식사를 하면서 외솔 선생이 편수국장을 하면서도 끝끝내 도시락을 싸가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군가 당시 대통령이 외솔 선생에게 문교부장관을 하라고 했으나, 선생은 편수국장이 더 중요하다며 제1,2대 편수국장을 지내셨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우리 회에서는 이날, 고 최현배 선생을 기리는 편수인상(編修人賞)을 드렸습니다.그건 외람되고 '편수인상(編修人像)'으로 삼겠다는 기념패를 드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아직 살아 있는 분들에게 상(賞)을 주는 것이 주목적이 되기 때문인지 그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이날 '자랑스런 편수인상'을 받은 다른 한 분이 있었습니다. 최현배 선생에게 올린 상패의 문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랑스런 편수인상

 

제1호 고 외솔 최현배 선생님

 

나라를 사랑하고 한글만 쓰기를 주장하신, 겨레의 스승 고 최현배 선생님께서는 1946년 문교부 초대 편수국장을 맡으시어 각급학교 교수요목의 제정과 교과용도서의 편찬·발행 제도의 법적 체제를 마련하셨으며, 특히 광복 후에 우리말 우리글 도로찾기,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등 국어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고 최현배 선생님께서는 1951년 두 번째로 문교부 편수국장을 맡으시면서 6·25 전쟁 중 전시 교육과정의 운영과 교과서의 적기 생산 및 공급 등에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제1차 교육과정 제정의 기반이 되는 교육과정의 연구 개발 및 교과서 제도 개선 등 초유의 큰 업적을 쌓아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기여하셨으며, 특히 편수는 우리 교육의 기초이자 기본이라는 신조를 남겨 주심으로써 편수인의 긍지와 명예를 드높이셨습니다.

 

이에 전 회원의 뜻을 모아 '자랑스런 편수인상'을 드립니다.

 

2011년 2월 25일 정기총회 날에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장 한상진

 

 

 

우리 회에서 총회 날에 고 최현배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입니다. 우리는 교육부 편수국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우리 회에서 발간하는 『편수의 뒤안길』(비매품) 창간호에서 최현배 선생이 6·25 전쟁 중에도 편수에 헌신한 이야기를 읽고,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성이나 그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신념 같은 걸 돼 새겨 온갖 어려움을 이겨냈는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올해의 총회 날에는 20여 년 전에 애써서 우리 회를 만든 함수곤(편수관리관)·김용만(교육과정담당관·사회과학편수관)·정성봉(자연과학편수관?) 선생의 얼굴이단 한 분도 보이지 않은 일입니다. 본래 무얼 만들어 놓으면 차지하는 인물은 따로 있고, 자신이 아니면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