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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교과서 논란, 누가 해결의 열쇠를 갖고 있나?

by 답설재 2010. 12. 7.

 

 

 

'아시아 3국(한국, 일본, 대만)의 교과서 내용 관련 쟁점과 해소 방안' 세미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에서 가져온 사진)

 

 

 

  지난 11월 23일(화) 오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아시아 3국(한국, 일본, 대만)의 교과서 내용 관련 쟁점과 해소 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기조강연. 미래지향적 한국 교과서의 발전 방향 : 이성무(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주제1. 오키나와 집단 자결 사건과 교과서 문제 : 야마구치 다케시(山口剛史, 류큐대학교)

    - 토론 : 현명철(경기고등학교), 조철수(동북아역사재단), 서각수(서울예술고등학교)

 

  ■ 주제2. 대만의 역사 교육과정 개혁의 쟁점, 대만사 교육 : 김유리(전북대학교)

    - 토론 : 문명기(인천대학교), 손준식(중앙대학교), 오병수(성균관대학교)

 

  ■ 주제3. 교과서 쟁점의 원인과 해소 방안 : 진재관(한국교육과정평가원)

    - 토론 : 구난희(한국학중앙연구원), 유상범(교육과학기술부), 이범홍(의치의학입문검사협의회), 김만곤(한국교과서연구재단)

 

  김만곤의 소속은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 재단에는 미안한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일종의 '프리랜서'쯤이지만 '한때는 찬란한 현역'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미나가 열리고 있던 그날 오후 그 시간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소식이 전해져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토론>

 

 

교과서 논란, 누가 해결의 열쇠를 갖고 있나?

 

 

 

  교과서 쟁점의 원인과 해소 방안, 더구나 구체적으로 ‘국사 교과서 파동’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논란’ ‘사회과 경제 관련 교과서 논쟁’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고, 내용적으로는 전문성이 없으면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더구나 저는 한때 이들 교과서 업무를 총괄적으로 담당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 이야기를 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적인 면은 언급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관점이 이 주제를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한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우선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생각을 털어놓겠습니다.

  먼저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학자들이나 교육자들도 아직 정립하지 못한 관점으로 교육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 것인지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그 중의 어느 학생이 “국사나 경제는 본래 이런 것이냐?”고 물으면, 혹은 “나는 이런 교과서로는 공부를 하기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어느 학생이 그런 논란 속에 공부한 결과로 사고의 혼란이 일어났다면서 소송이라도 제기하면 어떻게 할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관련 학자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발표문에는 이런 부분이 보입니다. “‘국사 교과서 파동’은 재야 학자들이 기존의 사학자들을 식민주의 사학자들이라고 비판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그 구체적인 학문의 결집체로 여겨지는 국사 교과서가 이러한 논쟁의 무대로 활용되었다.” 국사 교과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한국근현대사나 경제 관련 교과서도 유사한 경우겠지요. 학자들은 왜 학문 연구의 결과, 학문 연구의 정수로써 편찬되어야 마땅한 교과서를 ‘논쟁의 무대’로 삼는 것입니까? 어느 쪽이 옳고 그르든 그렇게도 논쟁할 장소가 없는 궁색한 학문이 역사 연구이고 경제 연구입니까? 지금까지는 무얼 하고 있다가 교과서를 만들어 심사 받고 발행되어 아이들에게 공급된 이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그러나 다 이유가 있겠지요. 현실적으로는 어떻습니까? 법원에서 역사를 잘 연구하고 경제를 잘 알아보고, 교육과학기술부나 출판사나 집필진들이 절차상 하자를 보이지 않았는지 잘 알아보고 재판을 멋지게 해주면 다 해결되는 겁니까? 재판이 잘 이루어지면 교육도 잘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까? 아니면, 언젠가는 해결될 테니까 교사와 학생들은 그때까지 더 참고 묵묵히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까? 교육을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나중에 다 밝혀지면 잘못 가르치고 배운 것을 다시 가르쳐주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학자들이 이견이 있더라도 좀 자제해야 합니까? 혹은 이 문제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국회의원들이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교과서 정책과 행정에 참여하면 되는 겁니까?

 

  제가 참 촌스런 생각을 하는 것이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앞으로 나올 교과서에 대해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기묘한 방안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앞으로도 대체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에 있을까요?

 

  교과서에 관한 한 이 문제 말고도 이야기해야 할 문제가 더러 있습니다. 몇 개 교과는 별도로 관리되는 걸 보면, 가령 앞으로 자동차를 잘 만드는 어떤 회사에서 자동차에 관한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는 우리가 제일 잘 아니까 그 행정을 우리에게 맡기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사라서 정부기관이 아니어서 믿을 수가 없습니까? 그러면 가령 국토해양부의 어느 산하 기관에서 그 일을 맡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겠는지 그런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니까, 이 문제에도 확고한 방안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또한 솔직한 심정입니다. 제가 이렇게 물어보고 있는 건 사실은 교과서 논란에 대해서도 누가 뭐라고 하든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확고한 방침을 가지고 나가야 하며, 교육과학기술부 말고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 가지 방안을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앞으로는 교과서를 만들지 않는 방안입니다. 그러면 검정이고 인정이고 심사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교과서가 없으면 수업을 할 수 없습니까? 학교가 당장 문을 닫을 지경이 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수업을 잘 하는 교사일수록 교과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이 그리 낮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비관적이라면 교사용지도서를 잘 만들어 공급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나라 중에는 선진국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지도서 검정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참 애석한 일입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무슨 성전(聖典)인양 붙잡고 있으면서도 수많은 종류의 자율학교에서는 별로 제약을 받지 않는 “학년별·교과별 시간배당기준”을 전체적으로 아예 없애버리고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간을 편성하여 가르치되 교육과정의 목표만은 철저히 달성시키게 하는 교육과정의 자율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그 교육과정의 목표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지도서를 잘 만드는 것이고 평가를 제대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교과 교육학자들에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어렵고 역사나 경제 교과목을 이야기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교과 교육학자들은 어느 교과목을 막론하고 해당 교과목 교과서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설 것이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몇 십 년 전부터 특히 몇몇 교과는 굳이 교과서가 있어야 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총론적인 세미나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며 공감하고 있지만 어느 교과도 교과서를 없애거나 그 형태를 바꾸자는 연구를 제안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교과목은 그런 제안을 하는 순간 ‘매국노’로 전락할지도 모르므로 이 방안은 아직은 일단 현실성이 전혀 없는 걸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방안도 있다는 건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현재의 교과서와 전혀 다른 교과서를 만드는 방안입니다. 현재의 우리 교과서는 종전에 비해 많이 발전한 것은 틀림없지만 아직도 학생들에게 지식을 퍼부어주는 형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제 학생들에게 지식을 설명해주는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그 선두에 서지는 못할지라도 이처럼 견고한 지식주입식 교육을 고수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21세기가 되자마자 “우리가 아직 교사와 교실과 교과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50년 뒤에는 거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돌이켜보면서 우리가 교육 개념을 바꾸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왜 수능 성적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왜 답을 암기하는 것이 지능의 증거라고 생각했는지 물을 것”이라고 한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난 세기와 그 이전의 수많은 세기 동안, 교육을 받는다는 것, 따라서 지성을 갖춘다는 것은 사실의 축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인용하는 능력, 어떤 관념에 익숙해지는 것을 의미했다. 교육은 정보의 축적을 의미했고, 대중이 생각하는 지성이란 자신이 축적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사실들이 벽에 씌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50년 뒤에 지식은 그저 알고 싶은 것을 큰 소리로 말하면 즉시 벽에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1

 

  교과서를 없애는 방법이 불안하다면 이런 생각에 따른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생각만 바꾸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아주 쉽습니다. 일찍부터 이런 교과서를 생각해온 학자들이 이미 연구를 많이 해놓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육과정에 제시된 목표에 따라 학생들이 사고활동을 하게 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꼬박꼬박 읽고 외워야 할 내용을 교과서에 다 담아줄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그 내용을 찾아가게 하는 교과서를 말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이러한 생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습니다.

 

  “교육적 지식은 정태적인 관조적 지식만이 아니라 역동적인 실행적 지식과 균형을 이루어 통합되어야 한다. (중략) 지식교육에 관한 한, 학교는 엘리트나 천재에 의해서 개발된 고도의 권위적 지식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정보의 바다’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지식사회의 환경 속에서 대중에 의해서 생산된 지식을 대상으로 교육할 것이므로, 전달된 지식과 정보의 단순한 수용보다는 지식과 정보를 평가하고, 선택하고, 조직하고, 활용하고, 생산하고, 재구성하는 데 관련된 능력을 더욱 중시해야 할 것이다.”2

 

  그렇다면, 그런 교과서에 실린 자료를 가지고 학자들이 그처럼 대립할 일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래와 같은 자료에 대해 의견을 교환해보자.” “아래의 자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보자.” “아래에 제시된 제목에 알맞은 자료를 찾아보자.” …… 이런 교과서에서는 우리가 굳이 학생들에게 시시콜콜 설명해주어야 할 일이 없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교과서를 만들지 못하는지, 무엇이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서로 다투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어렵다면 마지막 제안입니다. 교과서를 지금처럼 느슨하게 심사하지 말고 엄격하게 심사하는 방법입니다. 현재까지는 교육과학기술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느슨하게 심사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사를 통과해 놓고 혹은 심사에 통과시켜 주니까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사에서 통과한 교과서가 왜 문제가 되도록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표현하는 건 가능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문제가 될 교과서는 아예 통과시키지 않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그 책임을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지어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고 싶어도 교육과학기술부의 각종 통제가 심해서 어쩔 수가 없다는 말까지 듣습니다.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검정기준은 일본이나 미국(예 : 텍사스, 캘리포니아) 등 다른 나라의 검정기준에 비해 매우 소략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령 일본의 경우에는 공통기준 중 ‘내용의 선정·취급 및 조직·분량’에 관한 항목만도 16개 항목이 제시되고 있고,3 미국의 텍사스 주나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검정의 절차나 검정심사기준은 매우 구체적이고 엄격하고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4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검정기준은 공통기준이나 교과별 기준이나 그처럼 소략한데도 불구하고 검정에 참여하는 출판사나 학자들이 창의성이나 독창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우리나라 검정 교과서는 종류만 많고 실제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는 지적에 대해 일반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의 통제와 규제 때문에 창의성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층적 면담을 들어보면, “추상적인 면에 대해서는 ‘공연한 모험’을 하기보다는 전례대로 처리하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생각으로 창의성의 발휘를 자제했다”고 토로합니다. 가령 공통기준 중 ‘내용의 보편타당성’을 예로 들면 “학문상의 명백한 오류나 관련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있는가?”라는 심사관점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내용의 보편타당성과 관련하여 아무런 혼란이 일어날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이고, 그 영역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정되어 검정에 합격한 도서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내용의 보편타당성과 관련하여 그동안 수많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금 표현이 미숙할 뿐이지 특정의 교과서가 보편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명백하게 심사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는 그런 면에서의 논란이 왜 일어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교과서 검정기준은 더욱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제시되어야 하며, 그렇게 정교화한 기준을 미국이나 일본처럼 강력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처럼 분명한 기준만 충족하면 검정을 통과할 수 있어야 마음 놓고 창의적인 교과서를 만들 수 있게 되며, 그처럼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기준을 모두 제시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교과서가 시장에 출판되도록 보장하는 것이 교과서 검정을 하는 기본취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 말하면 이렇게 엄격한 기준, 정교한 기준을 통과한 교과서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있을 때 정부에서 먼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다고 통과시켜준 측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 검정기준(교육과정, 그 해설서, 편찬상의 유의점, 편수자료, 집필기준, 검정심사기준)은 추상적입니다. 자신이 없으면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점에서 추상적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추상적인 진술을 해놓으면 교과서를 만드는 측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세미나의 주제발표문에 포함된 방안들은 실현만 된다면 당연히 좋은 것들입니다. 다만 그 내용 중에는 당장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행정가들이 흔히 말하듯 ‘장기적으로 검토해볼 만한 안’이라고 이야기할 제안도 보입니다. ‘교과서 검정 전담 기구 설치’ ‘검정심의회 위상 강화’ ‘(가칭)교과서위원회 설치’ 등 행정적인 결정이 필요한 일들은 결정을 지원하는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실현되면 교과서 행정이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적습니다. “보십시오. 이 업무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기구가 필요하고 저런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주장해야 설득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바탕이 바로 ‘교과서 정기검정제’가 아닌가 합니다. 일본이나 미국 등의 정기검정제를 우리는 애써 ‘교과서 유효기간 문제’로 축소해서 해석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기 검정제를 실시하면 학교급별․교과목별 검정 및 발행을 연차적으로 시행하게 되므로 교육과학기술부는 물론 검정 실무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과서 출판사 등 모든 기관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안정적으로 정책을 연구․기획할 수 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그 조직을 설립 취지에 맞추어 교육과정․교과서 연구 및 검정 업무 추진 체제로 정비할 수 있으며, 출판사들은 우수한 집필․편집진을 항상적으로 운영하면서 교과서 연구․개발에 지속적인 투자가 가능하여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처럼 교과서 전문 출판사를 육성 지원하는 지름길이 됩니다.5 정기검정제가 실현되어야 교과서 행정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교과서 정책이 바로잡힐 것입니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하필 학생들의 교과서를 사이에 두고 소모적인(교육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쓸데없는) 논쟁을 하도록 무대를 마련해 줄 필요는 전혀 없다는 점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정말로 가소로운 일입니다. 할 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 교과서 논쟁이 벌어진다고 하면 우스운 논리일 뿐 아니라 그 논의의 장을 왜 교과서가 열어 주어야 합니까? 공정하고 전문적인 심사위원 섭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불공정하고 비전문적인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뜻입니까? 교과서 집필진이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습니다. 그건 기초 상식에 지나지 않고 정책에 반영한다고 그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정책에 반영하면 당장 그 효과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 정책연구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어떤 방안이든 학자들의 깊은 연구가 있어야 잘 이루어질 수 바탕이 마련되고, 교육과학기술부에는 그런 연구를 분석 검토하고 정책에 반영하면서 그 일을 쉽고 재미있게 멋지게 처리할 수 있는 훌륭한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로저 샨크,「우리는 더 영리해지고 있는가?」존 브록만 엮음·이한음 옮김,『앞으로 50년』생각의나무, 2002, 295~296, 301쪽. [본문으로]
  2. 교육부 미간행 자료집, 2000.11,「지식기반사회와 교육」,39쪽. [본문으로]
  3. 일본의 교과서 검정기준(문부과학성, 1999) 중 [선택․취급 및 조직․분량]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16개 항으로 되어 있다(김만곤·김차진·강환동·주용준(2006).『검정도서 수정·보완체제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한국교과서연구재단 연구보고서), 16~18쪽). ①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된 목표, 내용 및 내용의 취급 사항에 비추어 부적절한 곳, 학생이 학습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내용은 실을 수 없음(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을 취급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② 정치 및 종교의 취급에서는 공정하고, 특정 정당 및 종파 또는 그 주의(主義) 및 신조에 편중된다든지 그것들을 비난한다든지 하는 곳이 없을 것 ③ 화제 및 제재의 선택․취급에서는 학생이 학습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없도록 특정 사항, 사상(事象), 분야 등에 편중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져 있을 것 ④ 도서 내용에 학생이 학습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없도록 특정의 것을 특별히 과도하게 강조한다든지, 단면의 견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다룬다든지 하는 곳이 없을 것 ⑤ 도서 내용은 엄선되어 망라적, 나열적으로 되어 있는 곳이 없을 것 ⑥ 화제 및 제재가 다른 교과에도 연계되어 있을 경우에는 충분한 배려 없이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고 있지 않을 것 ⑦ 도서 내용에 다른 교과,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는 다른 분야 또는 다른 영역, 도덕 및 특별활동의 내용과 모순되는 곳 및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곳이 없을 것 ⑧ 도서 내용에 심신의 건강이나 안전 및 건전한 정서 육성에 대해 필요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등 학교교육 전반의 방침에 반하고 있는 곳이 없을 것 ⑨ 도서 내용(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을 제외함)은 전체적으로 계통적, 발전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학교교육법에 따른 수업 시수 및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는 내용 및 내용의 취급 사항에 비추어 전체의 분량 및 그 배분이 적절하게 되어 있을 것 ⑩ 도서 내용의 조직 및 상호 관련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있을 것 ⑪ 도서 내용 가운데 설명문, 注, 자료 등은 중요한 기술과 적절히 관련지어 다루고 있을 것 ⑫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지 않은 내용을 다룰 경우에는, 그 외의 내용과 구별되어 학습지도요령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내용임이 명시되어 있을 것 ⑬ 실험, 관찰, 실습, 조사 활동 등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학생이 스스로 해당 활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적절한 배려가 이루어져 있을 것 ⑭ 인용, 게재된 교재, 사진, 삽화, 통계자료, 그 밖의 저작물은 신뢰성 있는 적절한 것이 선정되고, 저작권법상 필요한 출처 및 저작자명, 그밖에 필요에 따라 출전(出典), 연차 등 학습상 필요한 사항이 제시되어 있을 것 ⑮ 도서 내용에 특정 기업, 상품 등의 선전 및 비난을 하게 될 우려가 있는 곳이 없을 것 ⑯ 도서 내용에 특정 개인, 단체 등의 권리 및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곳이 없을 것 [본문으로]
  4. 김만곤 외(2006), 위의 연구보고서, 21~30쪽. [본문으로]
  5. 김만곤 외 위의 보고서, P. 108~11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