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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영화 "울지마 톤즈"

by 답설재 2011. 2. 5.

 

 

 

 

 

'수단의 슈바이처', 고(故)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그린 KBS TV의 다큐멘터리 영화. 그는 2001년부터 아프리카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2010년 1월 14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이태석 신부의 사진을 받아든 한센병 환자 아순다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사진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발가락이 뭉그러져 버리고 게다가 맹인이었다. 맹인 아순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톤즈에서 그가 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내란 중인 그 폐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환자가 몰려들어 병원을 지었다. 도면은 아무나 그릴 수 있는, 초등학교 학생이 정성들여 그린 전개도 같았다. 그는 그 도면을 보여 주면서 소년처럼 미소지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이 해냈다. 그럼에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약품을 보관할 냉장고를 위해 태양열로 전기를 일으키고 그 전기로 전등을 켰다.

"예수님은 이곳에 성당보다 학교를 먼저 지었을 것"이라며 초·중·고 종합학교를 세웠고, 자신은 고등부 수학을 가르쳤다. 음악도 가르쳤다. 그는 피아노와 플룻, 트럼펫, 기타…… 어느 악기나 다 스스로 배워서 배운 걸 가르쳤고, 35인조 브라스밴드를 지도하기 위해 밤새워 악보를 그렸다.

그가 별로 하지 않은 일은 그들에게 기도를 시키는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다만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착한 마음을 가지면 트럼펫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왜 하필 아프리카까지 갔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

주변의 불행한 사람들부터 돕고 나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도우러 가겠다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는다. 결코 아프리카까지 가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갈 수가 없다. 그렇게 끝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아프리카까지 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손으로 머리칼을 자르고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또 그와 같은 쑥스러움으로 「열애」(윤시내)를 노래했다. 열창이었지만 힘들이지 않고 조용하게 노래했다.

 

……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 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우우우우우……

 

 

그는 의대를 다니는 6년 동안 장학금 한번 받지 못한 것을 어머니께 미안해했다.

그는 2008년 가을 휴가 때 생애 처음 건강진단을 받고 대장암 말기이고, 온몸이 암투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몸으로도 톤즈로 돌아가야 한다고 절규했다. 열여섯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고 양평수도원에서 48세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 2010년 1월 어느날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물었고 '거인(巨人)'이 대답했다.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엄마."

영웅도 어머니 앞에서는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울지 마, 톤즈』는 가혹한 것 같다.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가고나서,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그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혼자서는 이태석 신부가 한 일을 다 할 수가 없고, 적어도 수십 수백 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얼른 나서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가버린 쓸쓸한 톤즈에는 그리움만 남은 것 같았다. 그 그리움은 그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난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항의'였다. 키만 크고 바싹 마르고 쌔카맣고 손톱만 붉은 그들은 소리내지 않고 울면서 말했다.

"많이 보고 싶다."

그들은 『울지 마, 톤즈』의 가혹한 인터뷰 카메라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쫄리 신부님.'

'한국에서 왔다가 간 쫄리 신부님.'

 

 

 

 

 

DAUM 영화에서 캡쳐

 

 

 

 

  <사족(蛇足)>

  ◈ 방송국에서는 모처럼 좋은 영화를 일찍 각 가정까지 보내주었습니다.

  ◈ 종교계의 '고위층'이 "이렇게 하면 나쁜 짓"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싸움을 벌이는 걸 보면 이젠 넌더리가 납니다. 그만 보여주어도 충분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정치판에 뛰어드는 걸 보면 불쌍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이 자만심은 고인의 빛나는 이름 앞에서는 부끄러워집니다. 그가 나를 보면 이렇게 말한다 해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까불지 마!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는 강력한 지도자였습니다.

  ◈ 다시 다짐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봉급 같은 건 없지만 다시 성금 내는 일에라도 참여해야 합니다.

  ◈ 교육도, 교육자도, 그의 생애를 통해 늘 온갖 비난을 받더라도 잠시 이와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2011. 11. 7일에 덧붙이는 자료

 

나는 이 자료를 통해 본의 아니게 교육의 획일성에 대해 혹 너무 가혹한 답변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해 왔습니다.

'본의 아니게'라고 한 것은, 이 자료야 말로 "종교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으므로 우리가 어쭙잖게 수많은 설명을 하거나 듣기보다는 바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이 낫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뜻과 달리 아이들에게 집단적으로 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어떤가의 문제가 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교육적인 견해야 어떻든지 간에 혹 언짢은 느낌을 가지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제 교육적인 견해 따위는 감출 수도 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더불어, 바로 다음과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이현 에세이, 「물이 되는 꿈(2)-얼음」, 『현대문학』 2011년 2월호, 237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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