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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현강재 천장에 비친 달

by 답설재 2011. 1. 28.

 

블로그 『현강재』의 「현강재 천장에 비친 달」(2011.1.17.05:27) : 현강재(玄岡齋) 주인은 이 사진에 이런 설명을 붙였습니다. "현강재 거실 천장은 유리로 덥혔다. 그래서 밤중에 불을 끄면 달도 보고 별도 본다. 한겨울이라 달빛도 차갑다."

 

 

 

 

현강재는 강원도 고성에 있는 안병영(安秉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님 댁 건물 이름이기도 하고, 블로그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교육부장관을 두 번 지냈습니다(1995.12.21~1997.8.5, 2003.12.24~2005.1.4).

두 번째 때는 직명이 그냥 장관이 아니라 부총리겸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처음에 장관이었을 때도 교육부에 있었고, 두 번째 때는 제가 2004년 8월 31일까지 근무하고 학교로 나갔으니까 그분은 제가 교육부를 떠난 4개월 후에 대학으로 돌아갔습니다.

첫 번째 때는 제가 직급이 낮아서 직접적으로 대할 일이 전혀 없었지만, 두 번째 때는 사나흘이 멀다 하고 결재를 받으러 장관실을 드나들었으므로 어쩌다가 일주일이 그냥 지나가면 궁금하고 허전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만큼 더러 꾸중도 들었고 칭찬도 들었습니다.

 

 

 

 

교육부에서 십여 년을 일했으므로 그동안에 거쳐간 장관이 열세 명이나 됩니다. 그 중에는 개인적으로 기억할 만한 일이 거의 없는 분도 있지만 더러 이야기할 만한 일화가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장관이 들으면 섭섭할지도 모르지만 저에겐 이분만큼 잊을 수 없는 분은 없습니다.

 

사실은 저는 그분 앞에만 가면 유독 저에게만 엄하셨던 선친(先親) 앞에서처럼 저절로 두려워져서 몸가짐이 부자연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잊지 못할 일이 더러 있으며, 그 중 한가지는 담배를 좀 줄이라는 부탁을 노래삼아 들으며 지낸 일입니다. 다른 장관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심지어 장관실에서 여러 명이 회의를 할 때에도 중간에 화장실 가는 척하며 담배를 피고 들어갔으니 그 냄새 때문에 멀리 앉아서도 다 알아챘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메일을 보낼 때는 "그때 부총리님 말씀을 잘 들었더라면 심장병을 앓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주위 사람들에게 저를 가리켜 머리칼이 하얗게 된 사람이 본부에서 고생한다며 늘 미안해 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부총리를 그만두고 연세대 교수로 돌아갔을 때에는 제가 교장으로 근무한 용인의 성복초등학교를 찾아 고학년 학생들에게 한 시간 동안 질의응답식 강의를 해주었고, 교사들에게도 그런 방법으로 두 시간 동안이나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그 교사들이나 학생들이나 예삿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저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일로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실어 놓고 매일 드나듭니다. 저와 달리 주말이 돼야 한 가지씩 자료를 탑재하지만, 저는 그렇게라도 매일 그분을 뵙지 않으면 궁금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그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블로그에 실린 위의 사진에는 제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부총리님. 거실이 그렇다는 걸 언젠가 조선일보에서 읽었고, 이 블로그 '현강재'에서 다시 읽었지만, 달 보시다가 혹 눈물이 흐르면 어떻게 하십니까. 절대로 그럴 일은 없으신지요. 다시 한번 정말로 기가 막혀 여쭙는 말씀입니다. 전 어쩌다가 아파트 보안등 불빛을 보면서 '달빛삼자'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기도 해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마음 속으로만 여쭙습니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마음 속으로만 여쭙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바로 그 '두려움' 같은 것 때문입니다. 이 댓글을 보는 순간 전화를 걸어서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칠지 모르는 일이며, 그러면 저도 전화로 말씀을 드릴 수는 없는 일이므로 몸이 불편한 건 고사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강원도 저 북쪽 고성을 찾아가서 앞으로는 정신을 차리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와야 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행한 일은 그분은 절대로 댓글에 답글을 달아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천하에 아무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된 것이고 저로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 혹 눈물이 흐르면 어떻게 하십니까 ……"

 

 

블로그 『현강재』에 가면 이런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서재 창문에 비친 겨울 풍경 셋」.

그 중에서 한 장을 보여드립니다. 그분이, 그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런 정서를 보여준다는 것은, ……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감동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 설명> 내 서제에 있는 세 개의 쪼각 창문은 저마다 다른 모습의 설경을 펼쳐 놓는다. 첫 창문은 멀리 울산바위를, 두 번째는 집 앞 은행나무를, 그리고 셋째 것은 얼마 떨어진 명품 소나무 몇 그루를 비친다. 모두가 액자 속에 풍경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