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추억 만들기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앙드레 김과 함께 유니세프를 많이 도와준 분으로도 유명합니다. 영화배우 안성기 씨도 그렇습니다. 찾아보면 더 있겠지요.
스스로 이야기하기가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지만 저도 1989년말부터 '세계교육자문위원'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했고, 기부금도 좀 냈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만 곧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행정을 맡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쪽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칭찬 받을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당시 제가 그 거창한 이름으로 한 일 중에는 국제이해교육을 위한 클럽활동 지도자료 개발 및 현장 적용, 국제이해교육 교사연수 실시, 사회과 교과서 내용에 유니세프가 하는 일 넣기 등 제법 그럴 듯한 일들이 있습니다.
다음은 그 즈음에 쓴 글입니다. 박완서 선생이 작고하자 이런 일들이 이것저것 생각났고, 뒤적이다 보니까 이 자료가 눈에 띄었습니다.
유니세프 추억 만들기
수업이 끝났습니다. 선생님께서 분유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도의 신발통에서 신발주머니를 꺼내어 우루루 교실 앞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헌 옷가지를 자르고 검정 고무줄을 넣어 만든 신발주머니의 흙먼지를 훌훌 털어 날립니다. 여러 아이들이 날리는 먼지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교실로 들어가면 선생님께서 그 신발주머니가 깨끗해졌는지 검사를 하시면서 분유를 나누어 주십니다. 아직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은 195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의 상흔이 시퍼렇게 남아 있을 때여서 집에서 메고 간 괭이로 학교 건물 뒤 실습지에 고구마나 감자를 심으러 나가면 언제나 총알 껍질이 수십 개씩 나오고, 때로는 대포 껍질도 나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밥 위에 얹어 찌신 그 분유는 돌덩이처럼 야물어서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면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점심을 꼭 싸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아직 양철로 된 신식 도시락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사발에라도 밥을 담아 점심을 가져오는 아이들은 집안이 넉넉한 몇 명뿐이었습니다. 분유를 이렇게 만들어 온 가족이 나누어 먹으면 아이들을 위해 분유를 나누어주는 보람이 없게 된다고 판단했는지, 어느날 아침부터 학교의 일하는 아저씨가 하루 종일 커다란 가마솥에 그 분유를 끓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차례로 한 그릇씩 받아 마셨습니다. 뜨거운 우유를 양재기에 부어 주었으므로 아이들은 그 우유 그릇을 운동장에 놓고 제각기 후후 불다가 마셨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6.25 전쟁 직후의 굶주리는 한국 어린이들에게 그 분유를 보내준 곳이 유니세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받은 아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기록에 의하면 담요도 많이 보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나도 이제 뼈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1년에 몇 푼씩이라도 후원금을 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문 기사 중의 아프리카 어린이의 모습이 사람 같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아직 우리 이웃, 우리 학교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멀고먼 나라의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후원금을 내는 일이 호사스러운 짓이 아니냐?"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일수록 주위의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성금도 잘 내지 않는다는 것을 함께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후원금을 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야 이러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다른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고, 나주에 그들이 커서 다른 나라 사람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가령, 몽골의 어느 마을 사람들은 한국에서 자원 봉사자로 간 천사 같은 유치원 교사를 보고 「솔롱고(무지개) 선생님」이라고 부른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수퍼마켓에 가면 한국제를 사고 싶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을 장차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기르고자 할 때, 우리의 교육 목표를 "국가 사회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자질을 기른다"로 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우리끼리만 똘똘 뭉쳐 우리 국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자질을 기른다"로 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어린이들에게 '유니세프에 대한 추억', '세계의 어린이들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방법은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으며 운영할 수 있는 클럽 활동 「지구촌 클럽」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은, 그러한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선생님께는 쉽고도 재미있고 기다려지는 프로그램들일 것입니다. (김만곤 선생님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세계교육 자문위원입니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장학관 ○○○
이 뉴스레터의 이름이 『지구촌소식』인 것도, 그때 우리가 만든 클럽활동 부서의 이름이 「지구촌클럽」이기 떄문일 것입니다.
<덧붙임>
나도 이제 뼈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1년에 몇 푼씩이라도 후원금을 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문 기사 중의 아프리카 어린이의 모습이 사람 같지도 않았었습니다.
본문 중의 그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사진은 많습니다. 퓰리처 수상작 중 「아이티의 눈물」은 그 예가 될 것입니다(2011.4.20).
조선일보, 2011.4.20.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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