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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유니세프 추억 만들기

by 답설재 2011. 2. 1.

 

 

유니세프 추억 만들기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앙드레 김과 함께 유니세프를 많이 도와준 분으로도 유명합니다. 영화배우 안성기 씨도 그렇습니다. 찾아보면 더 있겠지요.

 

  스스로 이야기하기가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지만 저도 1989년말부터 '세계교육자문위원'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했고, 기부금도 좀 냈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만 곧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행정을 맡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쪽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칭찬 받을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당시 제가 그 거창한 이름으로 한 일 중에는 국제이해교육을 위한 클럽활동 지도자료 개발 및 현장 적용, 국제이해교육 교사연수 실시, 사회과 교과서 내용에 유니세프가 하는 일 넣기 등 제법 그럴 듯한 일들이 있습니다.

 

  다음은 그 즈음에 쓴 글입니다. 박완서 선생이 작고하자 이런 일들이 이것저것 생각났고, 뒤적이다 보니까 이 자료가 눈에 띄었습니다.

 

 

유니세프 추억 만들기

 

 

  수업이 끝났습니다. 선생님께서 분유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도의 신발통에서 신발주머니를 꺼내어 우루루 교실 앞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헌 옷가지를 자르고 검정 고무줄을 넣어 만든 신발주머니의 흙먼지를 훌훌 털어 날립니다. 여러 아이들이 날리는 먼지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교실로 들어가면 선생님께서 그 신발주머니가 깨끗해졌는지 검사를 하시면서 분유를 나누어 주십니다. 아직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은 195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의 상흔이 시퍼렇게 남아 있을 때여서 집에서 메고 간 괭이로 학교 건물 뒤 실습지에 고구마나 감자를 심으러 나가면 언제나 총알 껍질이 수십 개씩 나오고, 때로는 대포 껍질도 나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밥 위에 얹어 찌신 그 분유는 돌덩이처럼 야물어서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면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점심을 꼭 싸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아직 양철로 된 신식 도시락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사발에라도 밥을 담아 점심을 가져오는 아이들은 집안이 넉넉한 몇 명뿐이었습니다. 분유를 이렇게 만들어 온 가족이 나누어 먹으면 아이들을 위해 분유를 나누어주는 보람이 없게 된다고 판단했는지, 어느날 아침부터 학교의 일하는 아저씨가 하루 종일 커다란 가마솥에 그 분유를 끓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차례로 한 그릇씩 받아 마셨습니다. 뜨거운 우유를 양재기에 부어 주었으므로 아이들은 그 우유 그릇을 운동장에 놓고 제각기 후후 불다가 마셨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6.25 전쟁 직후의 굶주리는 한국 어린이들에게 그 분유를 보내준 곳이 유니세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받은 아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기록에 의하면 담요도 많이 보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나도 이제 뼈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1년에 몇 푼씩이라도 후원금을 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문 기사 중의 아프리카 어린이의 모습이 사람 같지도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아직 우리 이웃, 우리 학교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멀고먼 나라의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후원금을 내는 일이 호사스러운 짓이 아니냐?"는 사람이 많고, 그런 사람일수록 주위의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성금도 잘 내지 않는다는 것을 함께 깨달았습니다. 스스로 후원금을 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야 이러한 깨달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다른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고, 나주에 그들이 커서 다른 나라 사람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가령, 몽골의 어느 마을 사람들은 한국에서 자원 봉사자로 간 천사 같은 유치원 교사를 보고 「솔롱고(무지개) 선생님」이라고 부른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수퍼마켓에 가면 한국제를 사고 싶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을 장차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기르고자 할 때, 우리의 교육 목표를 "국가 사회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자질을 기른다"로 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우리끼리만 똘똘 뭉쳐 우리 국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의 자질을 기른다"로 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어린이들에게 '유니세프에 대한 추억', '세계의 어린이들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방법은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으며 운영할 수 있는 클럽 활동 「지구촌 클럽」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은, 그러한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선생님께는 쉽고도 재미있고 기다려지는 프로그램들일 것입니다. (김만곤 선생님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세계교육 자문위원입니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장학관 ○○○

 

 

 

 

 

이 뉴스레터의 이름이 『지구촌소식』인 것도, 그때 우리가 만든 클럽활동 부서의 이름이 「지구촌클럽」이기 떄문일 것입니다.

 

 

 

  <덧붙임>

  나도 이제 뼈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1년에 몇 푼씩이라도 후원금을 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문 기사 중의 아프리카 어린이의 모습이 사람 같지도 않았었습니다.

 

  본문 중의 그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사진은 많습니다. 퓰리처 수상작 중 「아이티의 눈물」은 그 예가 될 것입니다(2011.4.20).

 

 

 

 

조선일보, 2011.4.20.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