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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에디슨박물관, 가보셨습니까? -교육도 심장 상하는 일입니다-

by 답설재 2011. 1. 19.

지난해 12월 어느 날 신문에서 강릉 '참소리 축음기·에디슨 박물관' 손성목 관장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내겐 평생 친구도 애인도 없어… 오직 축음기밖에 없지요" 그게 제목이고 부제 두 가지는 '미친 놈 소리 들어가며 암·파산 위기 속에서도 에디슨 발명품 2000점 모아' '1000억원어치쯤 되겠지만 수집품은 내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사회의 재산' 두 가지였습니다.(조선일보, 2010.12.20. '최보식이 만난 사람')

 

그 제목을 보는 순간, 11년 전인 1999년 12월 21일에 강릉의 그 박물관을 찾아가(그해 가을에 나는 교육부에서 학교로 나왔고 그런 곳도 가볼 만큼 모처럼 참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단 6개월 만에 다시 교육부로 돌아가게 되어 그 한가함이 길진 못했지만) 그 어마어마한 수집품들을 보고 가졌던 그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이분은 축음기 모으는 일에 미친 사람이다. 안타깝지만 아직도 축음기 모으는 일 그것뿐이구나.'

 

그가 모아놓은 자료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뿐입니다. 11년 전에 내가 본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뿐입니다. 더 이야기할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 박물관에서 무얼 사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마땅한 것이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오려니까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손성목 관장에게 미안해서 에디슨 흉상 하나를 사들고 그게 부서질까 봐 조바심을 하며 돌아왔습니다.

 

 

 

<에디슨에겐 미안하지만 저 근사한 사람 모습은, 옆에 세워 놓은 LP판 「Nicolas de Angelis - QUELQUES NOTES POUR ANNA」가 함께 찍힌 것입니다>

 

 

 

 

 

 

팸플릿의 관장 인사말 페이지에는 1948년에 그의 부친께서 선물로 사주었다는&nbsp;일본제 축음기 콜롬비아 G241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 선물 때문에 그의 진로가 그렇게 결정되었다면 우리는 선물을 할 때는 어쨌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팸플릿에 실린 자료들입니다. 아래 사진은 언젠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니퍼 이야기입니다.

 

"니퍼라는 강아지가 죽은 주인과 함께 항상 즐겨듣던 '무도회의 권유'라는 음악이 끝나면 혹시 축음기 나팔에서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극작가 프랭크시맨이 쓴 드라마이다. 오늘날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디오와 레코드 심벌마크로 사용하고 있는 "His Master's Voice'는 이러한 드라마와 더불어 더욱 인상적이다. 현재 참소리·에디슨 박물관의 상징이기도 하다."

 

팸플릿에는 그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이 마스코트 모형이라도 만들어 팔거나 저 위의 여러 가지 축음기 모형을 만들어 판다면 좀 비싸더라도 한 개를 사왔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나 같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관장님껜 대단히 미안하지만 '나 같으면' 모으는 일에도 힘쓰고 그 모으는 일보다 더 힘들여 전시하고 체험시키는 일(교육하는 일)에도 노력했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모형을 만들어서 사가게 하는 일에도 힘썼을 것입니다.

 

하기야 니를 잘 아는 누가 내 일생을 그렇게 관찰해본다면 그도 역시 '나 같으면……'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나도 좀 미쳐서 살아온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보니까 교육이란 혼자 미쳐서 날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하는 교사를 만나면 이제 곧 물러갈 나보다 그가 더 중요한 사람이어서 간이라도 꺼내 줄 것처럼 했는데 지나고 보면 그것도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괜히 심장만 상합니다. 나는 심장 상한다는 말의 뜻을 몰랐는데, 정말로 심장이 상해서 병원을 두 곳이나 돌아다녔고(뭣 좀 안다는 놈들이 우선은 동네 병원에 가야 한다고 떠들고 있는데 그런 논리도 결국 심장 상하게 하는 논리였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한답니까? 그것도 심장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병원의 용한 의사들이 제 심장을 열어서 들여다보고 무엇을 집어넣고 했습니다.  그 철망인가 뭔가를 집어넣어 주고 "이제 괜찮을 것"이라고 했는데 심장 상하는 일이 있으니까 또 막혀서 또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숨을 거두는 날까지 저 약을 하루에 몇 개씩 집어넣어야 한답니다. 그러므로 그 박물관 관장이 들으면 섭섭한 소리, 심장 상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부천에도 그 박물관 분관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