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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앨빈 토플러는 옳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대로 간다!

by 답설재 2010. 10. 21.

 

40년 만이라고 합니다. 미래학자 토플러 팀의 예측이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습니다.1

 

'정보 과잉' '권력 이동' '디지털 혁명' '변화의 속도' '지식의 시대'.

앨빈 토플러는 옳았다. 40년 전 그가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을 통해 제시한 미래에 대한 그림은 놀랍도록 들어맞고 있다. 전 세계에서 600만 권이 팔린 책 속에서 그가 만들어냈던 참신했던 용어들은 이제 일상이 되고, 상투어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40년 동안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토플러 부부가 설립한 컨설팅 회사인 '토플러 어소시에이츠'는 14일 '앞으로 40년 동안 일어날 40가지 트렌드'를 예측했다. …(후략)…

 

그 앨빈 토플러가, 30년 전에는,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그 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선풍을 일으킨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앨빈토플러, 유재천역, 주우, 1983, 24판, 49쪽).

 

노동의 터전이 논밭과 가정에서 공장으로 옮겨짐에 따라 아이들은 공장노동에 적응하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 그래서 나타난 것이 모든 제2의 물결의 사회에 공통된 또 하나의 주요한 구조인 대중교육(Mass-education)이다.

 

교육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이 설명을 인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1980년에 그렇게 썼으므로 어언 30년이 다 되어 가는 그 지적을, 오늘 우리 교육이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이어진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공장을 모델로 해서 설립된 대중교육은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산수(算數)를 중심으로 해서 역사와 그 밖의 과목도 극히 간단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교과과정일 뿐 그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교과과정이 있었는데 이것이 산업사회의 기반으로서 훨씬 중요했다. 이 교과과정은 세 개의 덕목(德目)으로 되어 있다. 대개의 산업주의 국가에서는 지금도 이 세 가지가 덕목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 시간 엄수, 둘째 복종, 셋째는 기계적인 반복작업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시간 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작업.

이 세 가지가 산업주의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특징이다.

 

여러분은 토플러의 이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학창시절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까?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예를 들어 '시간 엄수'가 늘 나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가령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미덕일 것입니다. 토플러가 이야기하는 '한심한' 시간 엄수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 문제를 주어진 시간에 다 풀어라." "다 해결한 사람 손들어. 아직도 못했나!" 더욱 한심한 '시간 엄수'도 있지요.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아는 사람 손들어."

 

시간 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작업.

오늘 우리의 교육현장이 아직도 이와 같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습니까. 학교교육이 구태의연하다는 지적은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오죽하면 어린 시절 부적응아로 홀대받은 아인슈타인도 뮌헨의 루이트폴트 김나지움에서는 교사에 대한 절대 복종과 암송,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껴 교사를 '중위(中尉)'에 비유했겠습니까(알베르트아인슈타인, 홍수현․구자현 역, 『나의세계관』, 중심, 2003, 15쪽).

 

토플러가 그렇게 주장했거나 말았거나, 다행히 우리 세대는 교과서에 담긴 핵심을 잘 암기하여 정확한 답 한 가지를 잘 고르면 진학도 하고 좋은 직장에도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토끼와 거북'을 읽고 그 우화의 교훈이 '노력'이라는 것을 척척 알아맞히면 앞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 외의 답을 하거나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면 '쓸데없는 말을 하는 골치 아픈 학생'이었습니다. 직장에서도 허구한 날 똑같은 일을 했으므로 '성실' '근면' '협동'이면 그만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그렇지 않다는 걸 토플러는 일찍부터 경고한 것입니다. 그는 '제3의 물결'은 '사회의 근본으로부터 변혁되는 심오한 사건'으로, 제3의 물결 문명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결코 소모되지 않는 원료는 상상력을 포함한 정보'라고 했습니다.

누가 평범한 신발을 찾고 이름 없는 상표의 옷이나 화장품을 삽니까. 사람들은 이야기가 담긴 핸드폰을 고르고, 꿈이 스민 신발을 찾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꿈을 가꾸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이들을 20세기의 그 공장에서 부지런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무턱대고 순종하면 좋은 사람'으로 기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그 잘난 엘리트들이 만든 지식을 외우는 공부만 시킬 수가 없게 되었고, 그 지식을 스스로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공부를 시켜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암기하라!"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를 물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가려는 길을 잘 안내하는 교육을 시켜야 하게 된 것입니다. 성적이 좋은 아이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 또 강의를 듣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의 계획에 따라 혼자서 공부하는 아이가 아닙니까. 바꾸어 말하면, 이제는 조용하게 설명을 잘 듣고 다 외우게 하여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 하나하나가 가진 개성을 다 살려주는 공부를 시켜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교육을 우리는 ‘모두를 성공시키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 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작업.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다른 나라들도 아직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안일할지 모르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토플러의 저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교육방법을 이미 다 바꾸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거의 우리만 이러고 있다는 게 제 조바심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앨빈 토플러를 참 좋아해서 그의 책을 많이 읽고, 그를 초청해서 강연회도 잘 열지만 정작 그의 생각을 실천하는 데는 꼴찌이고, 특히 교육이 그렇다는 게 제 한탄의 핵심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토플러팀의 앞으로 40년 후, 그러니까 2050년까지 40년간 일어날 40가지 트렌드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습니다. 40가지라지만 우리는 기자들이 열거해준 것만 읽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두 신문의 내용을 종합해봤습니다.2

 

* 세계적으로 새로운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할 전망이다.

* 여성 지도자들이 괄목할 만하게 증가할 것이다.

* 종교단체들이 주도하는 세력이 정부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처럼 자선사업을 하는 기업가들의 국제적 영향력이 갈수록 증가하게 된다.

* 기술 발전으로 세계적으로 전문가에 대한 신속한 접근이 용이하게 된다.

* 조직의 성공은 해답을 구하는 사람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 화학·생물학·방사능·핵·기상 관련 센서들이 휴대전화와 같은 생활필수품에 대거 내장된다.

* 지금까지 인기를 끌어온 20세기 대량생산 방식은 고객의 주문에 맞추는 '온 디멘드(on-demand)' 생산으로 바뀐다.

* 작고 싼 감시 장치의 광범한 사용으로 사생활 침해 사례가 확산될 것이다.

* 분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데이터가 모여들어 '사이버 더스트(cyber dust)'가 쌓인다. 즉 불필요한 정보가 넘쳐날 것이다.

* 정수 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해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질병이 사라지게 되며, 음용수 부족도 해결될 것이다.

* 소비자들이 가장 중요한 혁신의 동력이 된다.

* 소셜네트워크는 더욱 영향력을 발휘한다.

* 기업들은 각국의 국경을 신속하게 넘나들 정도로 민첩한 조직으로 변신하게 된다.

* 기술 진보는 가난한 국가에 경제강국이 될 기회를 제공한다.

* 변화의 속도가 빨라 지식이 못 쓰게 되는 '옵솔로지(ob-soledge)'가 출현한다. 즉 정보의 홍수와 급속한 시대변화로 인해 항상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무용지식이 많아지게 된다.

* 공간적 일터의 중요성은 더욱 감소한다. 즉 어디서 일하는지는 덜 중요해진다.

* 화이트칼라는 칸막이 친 사무실에서 풀려날 것이다.

 

 

 

40가지 트렌드가 발표되었다고 했으므로 이외에도 더 있을 것입니다. 특히 교육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 소식을 전한 우리나라 기자들은 교육에는 관심이 적어서 US투데이의 그 보도 중에서 교육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고 소개한 걸까요? 교육에 관한 내용은 소개해봤자 관심을 가지는 독자도 없을 거라고 단정해버렸을까요?

 

앨빈 토플러는 최근에는 2007년말, 2008년말에 연이어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2007년 연말에 방한한 그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풀빵 찍듯 하는 학교, 국가 경제 망칩니다."

저는 그 말이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작업"과 같은 말로 읽혔습니다. '풀빵 찍듯 하는 학교'……

 

그는 다시 2008년말 우리 국회 초청 연설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교육으론 미래가 없다"면서 우리의 교육 시스템 자체를 다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그 말도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작업"과 같은 말로 읽혔습니다.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교육'……

2009년에는 그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오면 늘 같은 말을 한다고 이제는 초청하지도 않는 걸까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뜻의 말을 표현만 바꾸어 되풀이하는 '꼴통' 같은 미래학자(이럴 때 이 꼴통이란 적절한 단어가 있다는 걸 '엘라'라는 제 독자 한 분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꼴통 같은 앨빈 토플러!

그렇지만 거꾸로 앨빈 토플러가 우리, 우리나라 교육을 보고 '꼴통'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요?

다른 나라는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작업'으로 특징지워지는 그 교육을 거의 다 바꾸었는데 한국은 바꾸지 않는다고.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봐도 바꿀 줄 모른다고.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이야기는 세 번째로 썼습니다. 맨 처음에는 '파란편지 73(2007.3.12)으로 '아주 특별한 시작에 대하여 : 우리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라는 제목이었고, 두 번째로는 '우리가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방법'(2007.12.24. 학교장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썼습니다. 거의 같은 이야기를 자꾸 써서 미안합니다. 이러다가 저도 '꼴통'이 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꼴통이겠지요. 그렇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래를 읽는 기술』의 저자 피터 슈워츠가 아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말이 들어 있답니다. "어떤 미래가 되든 철저한 준비를 해라. 그 상황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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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10.10.16.A12면, '2050년, 여성·종교그룹 권력중심 부상

2. 조선일보 위의 기사 및 문화일보 2010.10.15, 2면 '2050년 세상은….

3. 조선일보, 2010.10.18. 김태익, 「토플러의 '앞으로 40년' 예측」에서 다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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