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지난 11월 어느 날, 우리 동네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장애우 학생 대상 태권도 대회가 열렸습니다. 제법 쌀쌀한 일요일인데도 '내빈'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공직에서 물러났으니까 그런 자리에 버젓이 참석하기가 쑥스러워 출입구 쪽 사람들 틈에서 살펴봤더니(우선 제 모습이 '꼴불견'이었겠지요), 단상에는 국회의원과 도의회·시의회 의원들, 교육장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저 안쪽 창문 아래로는 교장들과 장학관·장학사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가운데의 바닥엔 태권도복 차림의 학생들이 앉아 있고, 뒷편 의자에는 학부모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쪽 창문 아래로 저처럼 서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신분이 모호한 사람들'이라고 해두겠습니다.
Ⅱ
안내장에는 한국장애인인권헌장, 식순, 대회사, 격려사, 축사와 함께 경기진행 순서 및 대진표가 실려 있었습니다.
식순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식전 경기
◇ 선수단 입장
◇ 국민의례
◇ 내빈 소개
◇ 대회사
◇ 격려사
◇ 축사
◇ 개회 선언
◇ 선수 대표 선서
◇ 시범단 시범
◇ 경기 진행
◇ 중식
◇ 경기 진행
◇ 시상식
◇ 폐회식
'국민의례'에는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목숨을 잃은 국군장병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이 포함됐습니다. 가슴아픈 순간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내빈 소개' 순서 때는 단상에 앉은 사람들을 빠짐없이 호명해서 얼굴을 보여주었지만, 다음 순서들은 연설을 지리하게 하는 사람도 없이 대체로 간략하게 진행되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시범단 시범'이 끝나자 사회자가 이렇게 안내했습니다.
"이상으로 개회식을 마치고 잠시 후 경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시범단 시범' 다음에 내빈들이 행사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적 배려를 해두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도대체 누가 남았을까 싶게 거의 모든 내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루루 체육관을 나갔습니다. 옆도 뒤도 돌아볼 생각도 없이 그야말로 당연한듯 그렇게 나가버렸습니다.
Ⅲ
나는 우리 교육에서 관습이 된 이런 모습을 고쳐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합니까? 바쁘면 참석하지 않으면 될 일을 왜 참석해서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높은 사람들이 나가는데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지면 어떠냐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행사는 왜 하는 것입니까? 교육을 하자는 것 아닙니까? 진정으로 교육을 걱정하는 교육자, 교육행정가라면 그런 어수선한 짓꺼리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런 꼴로 교육을 해왔으니까 오늘 우리의 교육은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내빈(來賓)'이란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고 온 사람', ‘손님’, ‘초대 손님’이란 뜻이고, "그날 나는 초대를 받아서 갔고, 사회자가 개회식을 마친다고 했으며, 그 시각에 내빈들이 자리를 떠나는 것은 관례인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면, 바로 그 관례를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중에 무슨 연락이 오거나 급한 일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 행사가 '교육(敎育)'을 하기 위한 행사라면 주최측에 사유를 대고 양해를 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는 교단에 있을 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곳곳에 수많은 기억들이 묻어 있습니다. 그 기억들은 어디든 다 좋은 기억들인데 단 한 가지 '어디든' '꼴불견'은 인사를 마친 교육감과 그 '졸개들'이 우루루 연수회장을 빠져나가는 꼬락서니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호감(非好感)'으로라도 그 이름을 각인시켜 다음 교육감 선거에 유리하도록 하고 싶은 거라면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학교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지는 것들 : 졸업앨범 (0) | 2011.01.10 |
---|---|
부끄러운 명함 (0) | 2010.12.30 |
이름붙이기 (0) | 2010.10.25 |
앨빈 토플러는 옳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대로 간다! (0) | 2010.10.21 |
시사교육자료 활용 연구 (0) | 2010.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