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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꼴불견 내빈

by 답설재 2010. 12. 6.

 

 

 

 

 

지난 11월 어느 날, 우리 동네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장애우 학생 대상 태권도 대회가 열렸습니다. 제법 쌀쌀한 일요일인데도 '내빈'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공직에서 물러났으니까 그런 자리에 버젓이 참석하기가 쑥스러워 출입구 쪽 사람들 틈에서 살펴봤더니(우선 제 모습이 '꼴불견'이었겠지요), 단상에는 국회의원과 도의회·시의회 의원들, 교육장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저 안쪽 창문 아래로는 교장들과 장학관·장학사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가운데의 바닥엔 태권도복 차림의 학생들이 앉아 있고, 뒷편 의자에는 학부모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쪽 창문 아래로 저처럼 서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신분이 모호한 사람들'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안내장에는 한국장애인인권헌장, 식순, 대회사, 격려사, 축사와 함께 경기진행 순서 및 대진표가 실려 있었습니다.

식순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식전 경기

 

  ◇ 선수단 입장

  ◇ 국민의례

  ◇ 내빈 소개

  ◇ 대회사

  ◇ 격려사

  ◇ 축사

  ◇ 개회 선언

  ◇ 선수 대표 선서

  ◇ 시범단 시범

 

  ◇ 경기 진행

  ◇ 중식

  ◇ 경기 진행

  ◇ 시상식

  ◇ 폐회식

 

'국민의례'에는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목숨을 잃은 국군장병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이 포함됐습니다. 가슴아픈 순간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내빈 소개' 순서 때는 단상에 앉은 사람들을 빠짐없이 호명해서 얼굴을 보여주었지만, 다음 순서들은 연설을 지리하게 하는 사람도 없이 대체로 간략하게 진행되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시범단 시범'이 끝나자 사회자가 이렇게 안내했습니다.

"이상으로 개회식을 마치고 잠시 후 경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시범단 시범' 다음에 내빈들이 행사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적 배려를 해두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도대체 누가 남았을까 싶게 거의 모든 내빈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루루 체육관을 나갔습니다. 옆도 뒤도 돌아볼 생각도 없이 그야말로 당연한듯 그렇게 나가버렸습니다.

 

 

 

 

나는 우리 교육에서 관습이 된 이런 모습을 고쳐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합니까? 바쁘면 참석하지 않으면 될 일을 왜 참석해서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까? 높은 사람들이 나가는데 분위기가 좀 어수선해지면 어떠냐고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행사는 왜 하는 것입니까? 교육을 하자는 것 아닙니까? 진정으로 교육을 걱정하는 교육자, 교육행정가라면 그런 어수선한 짓꺼리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런 꼴로 교육을 해왔으니까 오늘 우리의 교육은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내빈(來賓)'이란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고 온 사람', ‘손님’, ‘초대 손님’이란 뜻이고, "그날 나는 초대를 받아서 갔고, 사회자가 개회식을 마친다고 했으며, 그 시각에 내빈들이 자리를 떠나는 것은 관례인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면, 바로 그 관례를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중에 무슨 연락이 오거나 급한 일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 행사가 '교육(敎育)'을 하기 위한 행사라면 주최측에 사유를 대고 양해를 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는 교단에 있을 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곳곳에 수많은 기억들이 묻어 있습니다. 그 기억들은 어디든 다 좋은 기억들인데 단 한 가지 '어디든' '꼴불견'은 인사를 마친 교육감과 그 '졸개들'이 우루루 연수회장을 빠져나가는 꼬락서니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호감(非好感)'으로라도 그 이름을 각인시켜 다음 교육감 선거에 유리하도록 하고 싶은 거라면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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