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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아, 독도!

독도를 알자는 주장-안동립이 그린 독도 지도를 보고 Ⅵ

by 답설재 2010. 9. 1.

그동안 내 친구 안동립 선생 얘기를 하면서 생각난 일입니다.

1996년 봄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해 2월에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이케다 일본 외상의 망언에 따라 한국과 일본간에 극한 감정 대립 양상으로까지 치달았던 독도 영유권 문제가 일어났었으므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은 이 문제를 세월을 두고 야금야금 꺼내는데, 우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들이 들고나올 때마다 '이것 봐라!' 고함을 질러 놓고는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 하며 지내는 건 아닌지,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약이 오릅니다.

 

그때 내게는 이케다의 망언과 관련하여 지금 생각해도 역시 화가 나고 가슴 답답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정부중앙청사 로비에서 서울대학교 A교수(익명으로 하죠)와 잠깐 일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끝에 내가 말했습니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전북의 어느 대학에 유학 온 일본 학생이 그 증거가 되는 사료를 들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글을 봤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일장기를 불태우거나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고함을 지르는 일을 일삼는데, 물론 그런 일도 해야겠지만, 일본인들처럼 자료를 모으고 차분히 대응하는 국민들도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선생님과 같은 전문가가 아니면 생각도 하지 않으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어떻습니까? 나는 정말이지 이 문제는 14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한 치의 양보도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대응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신문에 글 쓰는 걸 전문가가 해야지 왜 아무나 합니까?"

 

그날 그 대화가 어떻게 더 이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돌아섰을 것입니다.

'그래, 신문에 글 써서 원고료 받는 일이나 잘 하는 전문가로 남아라! 우리나라엔 독도에 관한 글을 쓸 사람은 당신 혼자밖에 없고, 일본에는 수두룩하면 그 꼴이 좋겠나, 에이 몹쓸 인간하고는!……'

그리고 그 후로는 그의 글이라면 읽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고 그의 사진까지도 꼴도 보기 싫어졌습니다.

 

물론 전문가가 쓴 글이 좋지요. 누가 그걸 모릅니까. 그러나 우리의 대응이 한두 명의 전문가로 끝나는 건 아니며, 더구나 우리와 일본의 국력이 문제라면 내 견해는 더더구나 충분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한 신문의 칼럼을 깜짝 놀라서 읽었습니다. 그 글의 취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차라리 일부를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 일본의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는 국내에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총 15권으로 이뤄진 '로마인 이야기'는 국내에서만 300만부(794쇄) 넘게 팔렸다. 문고판을 제외하면 일본보다 더 팔렸다는 말까지 있다. 국내에선 출간되지 않은 '일본인에게-리더(leader)편(篇)'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한·중·일 과거사 해법에 대해 하나의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역사 저술가의 제안이라니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녀는 과거사 문제를 재판에 비유했다. 한국과 중국을 원고(原告), 일본을 피고(被告)로 규정했고, 배심원은 다른 나라들이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래 피고인들은 유능한 변호인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죄(斷罪)를 피하려면 철저히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왜냐하면 원고측(한국과 중국)은 탁자를 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전법(戰法)을 잘 쓰기 때문에 일본인은 침묵해버리기 쉽고, 침묵하고 있으려면 증거를 통해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

 

'원고측(한국과 중국)은 탁자를 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전법(戰法)을 잘 쓰기 때문에'?

어떻습니까?

나에게는 내가 그동안 정말로 좋아했던 한 역사 저술가가 결국은 이렇게 본색을 드러냈다는, 그것도 평생을 역사 소설 연구에 바쳐 그의 조국에 결론삼아 제안한 것이 "증거를 잘 수집하라"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하도록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탁자를 치며, 일장기를 불태우며 목소리를 높이는 '전법'을 잘 쓴다는 걸 어떻게 그리 잘 파악하고 있는지요.

 

그리고 말입니다. 위에서 내가 서울대학교 A교수와 나누었다는 그 이야기를 생각해보십시오. 내 견해가 어떻습니까? 우리는 탁자를 치며 목소리나 높이고(그게 잘못이라는 건 결코 아니지만, 일장기나 불태우고 주한 대사관 앞에 가서 고함이나 지르고), 일본은 모든 국민이 증거를 수집해 나간다면 결국 누가 이기겠습니까!

 

아, 정말……

이 글을 쓴 언론인은 일본이 우리를 지배했으므로 남아 있는 증거들이, 공문서 하나까지 모두 강자의 논리에 의한 것이므로 그런 증거라면 일본측이 얼마나 유리한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겠습니까? 승리를 거두어 역사를 서술하는 측이 자신들을 가리켜 교활하고 무도하고 잔악하고…… 아주 몹쓸 민족이라고 자책하는 경우가 역사에 단 한 줄이라도 있었습니까?

 

저는 그 견해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증거를 수집하고 모아두는 일에 약합니다. 심지어 있는 증거까지 다 집어치우고 없애버리고 부수어버리는 일을 잘 합니다. 그런 일을 하면 오히려 서글프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왜(倭)' '일본'이라는 흔적은 일부러라도 다 지워버리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지긋지긋하지요. 그러나 사진이라도 잘 찍어두고 녹음이라도 잘 해두고 '저장'이라도 잘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나라에 그런 일에 유능한 인재가 많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가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이 블로그에 안동립 선생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 쓴 것입니다. 그에게도 어설픈 면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노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싶고, 그래서 그 친구를 거의 '무조건' 좋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신문의 칼럼은 이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 한 역사 저술가의 견해라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 인식이 일본에선 특별한 게 아니다. 필자가 일본에서 보았던 마음씨 좋은 복덕방 아저씨부터 패션모델까지 과거사 얘기만 나오면 "증거를 대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남의 나라를 강제 점령하고, 독립 만세 불렀다고 7500명을 죽이고, 강제 징병과 징용으로 수없이 목숨을 빼앗고, 식민지 여성들을 위안부로 학대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증거를 대라"고 하는 것은 '너희가 못나서 당해놓고 왜 징징거리느냐'는 것이다. 일본에는 시오노 나나미와 같은 사람이 1억명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 1억 명을 당해낼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마련합니까?

그것이 바로 이 나라 교육의 과제입니다.

'피끓는' 교육의 과제입니다.

안동립 선생은 『사회과부도』를 만들긴 하지만 교육의 실제는 잘 모를 것입니다. 교육을 돕는 일, 교육을 돕는 사업을 하면서 '왜 교육을 저렇게 하는가?' 싶지 않겠습니까? 그 물음에 우리가 답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DAUM에서 찾은 자료입니다. 나도 이 작가를 참 좋아하지만(그가 지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수로 이야기해도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만도 나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보십시오. 펜카페도 있지 않습니까?) 초상권 혹은 저작권 문제를 들고 나오거나 이런 문제로 이 자료를 가져와 실은 것이 기분 나쁘다는 분이 있으면 그분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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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상, '1억명의 시오노 나나미'(조선일보, 2010.8.14,A26면, 조선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