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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아, 독도!

안동립이 그린 독도 Ⅴ-시큰둥했던 <독도지도1>-

by 답설재 2010. 8. 26.

  언젠가, 좀처럼 자랑을 하는 사람이 아닌 안동립 선생이 전화를 하더니 대뜸 한번 찾아와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독도 지도를 그렸는데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보여준 지도가 바로 <독도 지도 1>이었습니다.

  저는 그 지도를 받아서 탁자 유리 밑에 깔아두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구경하다가 뭘 물으면 아는 대로 이야기해주기도 했지만, 정작 그 지도를 그린 안 선생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해저등고선'(부끄럽지만 이런 용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이 없어서 '해저 지형을 알 수 없는 지도가 무슨 지도인가?', '특히 독도 지도가 이렇게 그려져서는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제 반응에 충격을 받아서 <독도 지도 2>('(주)동아지도'의 중학교 사회과부도 면지에도 실은 그 지도)를 그린 것은 아니겠지요.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우선 발표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독도 지도 1>을 발표한 다음에 <독도 지도 2>를 그렸겠지요.

 

  까짓거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고, 혼자 하고 있다면 중간 단계에서 좀 일찍 발표한들 어떻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만약 그의 상사(上司)라 하더라도 '이 사람이 이러는구나' 하고 넘어가 주었을 것 같습니다. 일을 창의적, 진취적으로 해내는 사람은 그런 객기도 부릴 수 있어야 일할 맛이 날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줄 필요도 있고, 그러다가 때로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줄 필요도 있을 것은 물론입니다.

 

 

 

 

 <독도 지도 1>

 

 

<독도 지도 2>

 

 

  건방지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랬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야간 과정의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다닌 것은 1983~5년이었고 강의를 받은 것은 1983~4년이었습니다. 나머지 1년인 1985년은 논문을 쓴다는 구실로 마음대로 대학을 드나들고 싶은 마음에 졸업을 하기 싫어서 다닌 한 해였습니다. 정말입니다. 전 2년간 학점을 잘못 받은 적이 없었고 성적 최우수 장학금도 두 번이나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공부하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박사 과정을 못했으니 공부에 대한 제 한이 얼마나 깊겠습니까. 한마디로 변명하면 바쁘게 사느라고 못했습니다.

 

  그 어느 해에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김우관 교수로부터 지도학 강의를 받았습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그분은 우리나라 전도를 그려오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우리나라 전도를 수많은 셀로 나누어 그 셀 하나하나를 등고선에 맞추어 색칠하는 방법의 지도였습니다. 정말이지 그 지도를 그리는 데 아마 보름 이상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다음 학기에 나갔더니 지도를 그려온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교수는 '이게 뭔가?' 하는 머썩한 표정이더니 그걸 펴보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정말로 그려왔습니까?"  저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없이 저와 그 교수의 표정만 살폈는데, 한참동안 제 지도를 살펴보던 그 교수가 기념으로 자신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 생각도 않고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버릇이 약간 문제인 채 살아왔습니다. 그 지도를 그분에게 준 것이 아깝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가볍게 들뜬 기분으로 해결하는 일들이 문제라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니까 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교수가 하라고 하면 해야지 하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다는 건 우리 교육의, 우리 대학 교육의 수준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익힌 작도법을 이용해서 나중에 교과서에 실을 지도를 직접 그리기도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걸 언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도를 그리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따분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려봐서 압니다. 그래서 안동립 선생을 좋아합니다. 그가 지도를 그리기 때문입니다. 남의 지도를 교묘하게 베끼는 사람이 아니라 살펴봐야 할 곳이 있으면 직접 가서 살펴보고 그리는 '황소'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