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멋진 학생 ○○에게

by 답설재 2010. 6. 30.

 

 

멋진 ○○에게

 

 

 

  ○○야, 특목고에 가려고 한다며?

  어머님께서 내 블로그에 들어와 그러셨어. 내가 정확하게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학교에서 영어와 자기주도적 학습에 대한 심사를 하겠다는 취지로 벌써부터 모의전형서류를 보내라고 하는데, 당장 전 학년 내신성적과 학습계획, 봉사활동, 독서체험 등 많은 서류를 준비해야하니 그게 걱정이 되고, 담임선생님과 함께 네 내신성적도 좀 걱정한다고도 하셨어.

  그래, 어머님께서는 당연히 걱정이 많으시겠지.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너도 마찬가지야? 아마도 그렇겠지. 사실은 나도 네 어머니께서 쓰신 분위기 때문에 그 얘기를 읽으며 가슴이 두근거렸으니까.

 

  어머님께서는 다른 학생들은 학원에서 배워가며 준비하는 걸 의식하셨어. 네가 가려는 그 학교 선생님들이 학원에서 준비한 학생들을 다 알아낼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마음만 먹으면, 즉 주의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눈치 챌 것 같아. 나는 어린이회 정·부회장 선거 입후보자 연설을 할 때 조금만 들어봐도 '아, 저 아이는 학원강사가 연설 원고를 대필해주었구나!' 알 수 있었지.

 

  다음으로, 내신성적에 대해서는 그 ‘성적’이라는 것을 학생들의 중요한 기본능력으로 볼 수 있으니까 어느 학교에서나 외면하고 싶지는 않겠지. 그러나 최고 성적인가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수준은 되는지 그걸 보겠다면, 그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더구나 네 성적이 그 정도는 넘지 않겠니?

  문제는 내신성적에서 최고 성적을 요구한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해. 나에게 40여 년을 교육자로 살아온 소감을 말하라면, 우리나라가 끊임없이 교과서 내용을 암기하는 교육에 매몰되어 왔으면서도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별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단다. 이처럼 공부를 많이 시키면서도, 그 공부를 더 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나라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가르쳐서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많이 외운 학생에게 우수하다고 해놓고는, 그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기대한 능력과 면모를 보이지 못하는 경향을 보고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혹은 “학교에서의 우등생이 사회에서의 우등생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억지스러운 말을 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 아니, 많이 외우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에게 우수하다는 말을 하지나 말든지, 그게 정말로 빼어난 능력이라면 그에게 리더가 되게 해야 정상이 아니겠니?

 

  이러한 생각들이 바로 특목고 입시문제에도 적용되어 어떤 학생을 어떻게 선발해야 하는가에 대해 오랫동안 논란을 벌여온 거야. 학교에서는 당연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고 애쓰고 -그래야 가르치기 쉽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래부터 우수한 학생이 거의 그대로 우수한 결과를 나타낸다는 의미일까?- 정부에서도 “그렇게 하세요.” 하고 일단 수긍한 다음, “그런데 그 우수한 학생이 어떤 학생인가요?” 하고 물으면 그때부터 여러 사람의 답이 서로 달라지는 거야. 그래서 지루하고 복잡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 그런 점에서는 최근에 정부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 대해 내신성적 중심이 아닌 여러 가지 능력을 보고 판단하자고 한 것은 정말로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바로 너처럼, 교과서 내용을 외우는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여러 가지 면에서 폭넓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학생이 유리할 테니까.

 

  학습계획이나 체험활동 기록은, 네가 경험한 일들을 네 목소리로 써내려간다면 학원에서 익힌 아이들보다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들은 학생들 글을 보면 남의 도움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얼마만큼 도움을 받았는지, 정말로 체험한 것, 읽은 것을 썼는지, 그렇지 않고 표시가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누가 도와주어서 준비한 서류인지 그 정도는 다 알아낼 수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네가 6학년 겨울방학 때 스키를 한 경험을 쓴 글을 아직도 이 블로그에 담아 가지고 있어. 그걸 생각하면 그때 내가 너희들에게 체험을 담은 글을 한 편씩 써달라고 한 것이 참 잘한 일인 것 같아. 그 글은 특별한 네 경험을 담은 주옥같은 글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출발선에서의 네 마음을 나타낸 부분은 그야말로 생생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지.

  바로 그런 정신, 그런 정서, 그런 경험이 네 글의 바탕이 되게 하면 정말로 좋은 글이 될 것 같지 않니? 『하버드 대학생들의 생각과 자기표현을 어떻게 다를까?』라는 책을 읽어봤더니 그 유명한 대학 입학생들의 에세이도 바로 그런 글들이야. 이 세상의 특별한 사람이란 바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고,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한 학생이라야 특별한 생각을 해서 그처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아니겠니? 바꾸어 말하면, 특별한 사람이란 어디서 내려온 사람, 튀어나온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 중에서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 아니겠니?

 

  ○○야.

  주눅 들지 말고 담임선생님 지도에 맞추어 준비하면 잘 될 것 같지 않니? 그 학교가 괜찮은 학교가 분명하다면 너를 놓치지 않겠지. 내가 지켜본 너는 그 학교에서 선발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아이니까.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네가 왜 그 학교에 가고 싶은지, 그 학교에 가면 어떻게 공부해서 네 능력을 어떻게 끌어올리고, 장차 어떤 인물이 되어 네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고, 이 나라 이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는 인물이 되려는지, 그걸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게 남은 힘이 있다면 모두 짜내어 너에게 주고 싶구나.

  네 능력과 노력, 너에 대한 네 부모님의 관심과 정성에 맞는 행운이 너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나는 네가 졸업한 후에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안부 묻고, 퇴직한 후에도 그렇게 해주는 너와 네 어머니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2010년 6월 28일

 

                                                                                                                                전 남양주양지초등학교 교장 김만곤

 

 

추신 : 2007년 겨울에 네가 쓴 글을 보여줄게. 내가 이걸 가지고 있었던 게 다행스럽구나.

 

 

 

 

스키 합숙 훈련을 마치고

 

  내일도 눈을 뜨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날 것 같다. 늘 규칙적인 생활로 하루가 반복되었지만, 스키 실력만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듯하다. 스키장 코스 언덕을 오를 때면 숨 가쁘고 다리가 저리며 처음의 다짐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시원한 찬바람을 맞을 수 있는 활강코스가 이어진다. 우리 초등학교 스키부의 연습코스가 바로 이렇다. 오르막 코스 → 내리막 코스 → 오르막 → 내리막.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시합 날이 코앞이다. 시합 날에는 항상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마다 꼼꼼히 자세히 해결하고 싶어진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내 친구들도 같은 것 같다. 모자도 단정히, 장갑도 튼튼히 끼고 옷도 잘 챙겨 입는다. 스키 합숙을 하니 친구들의 단점과 장점도 금방 알게 되며, 가족과 같은 소중한 마음이 생긴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 시합 출발선에 스키만 닿으면 바로 남남이 되어간다. 서로를 이기려고, 또 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물론 난 4학년 때부터 스키를 시작했기 때문에 익숙하니까 시합을 당연히 잘 뛰었고, 날 이기려던 친구들이 실망할 때마다 난 어깨를 토닥이며 최대한 위로의 말을 하려 애썼다. 역시 결과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큼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결과를 바라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일찍 시합을 마쳤다.

 

  숙소에 가면 맛있는 아침밥을 9시에 먹겠다. 하루하루 일찍 일어나셔서 우릴 위해 아침밥을 챙겨주시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밥 먹을 때만큼은 항상 약한 마음,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밥을 골고루 열심히 먹는다. 저 멀리 엄마가 걱정하고 계실 수도 있을 테니까∧∧ 아침을 먹고 나면 거의 6시간은 남는다. 1시간 낮잠 자고, 산책하고, TV를 본다. 레슬링 할 땐 레슬링 보고, 광고할 땐 공부를 하고… 늘 그런 식이다. 우리의 이런 생활을 교장선생님은 무척 궁금해 하시고 걱정하시겠지? 우린 이렇게 잘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위해 걱정하고, 칭찬하고, 뒤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다.

 

  스키 합숙 훈련을 하다 보니 스키 주장인 나는 리더십도 생기고, 단체생활을 하니 책임감과 배려심이 생겨서 참 좋은 것을 배우고 왔다는 뿌듯함이 생긴다.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원평가'에 대한 생각  (0) 2010.07.28
S 교사의 유월  (0) 2010.07.11
소녀 '생각하는 자작나무'가 보낸 그림엽서들  (0) 2010.06.22
아이들이 주연이라는 선생님  (0) 2010.06.06
☆☆의 손편지  (0) 201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