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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S 교사의 유월

by 답설재 2010. 7. 11.

 

 

S 교사의 유월

 

 

 

  "아무리 이름 없이 살아가는 여인일지라도, 아이를 낳아 이 세상의 일원이 되게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여자는 이미 인간의 중심이며, 세상의 빛이며, 빛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나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후에야 깨달았다."

 

  가끔 아이를 낳던 그 때를 떠올린 적이 있어요. 자주는 아니에요.

  첫째, 둘째 때는 그래도 오래 되었다고 가물가물하지만

  셋째 녀석은 새벽 5시 무렵에 낳기 위해,

  온 밤을 진통과 싸웠던 기억이랑 나의 허벅지 뼈를 누가 지그재그로 쪼개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면서 통증을 견뎌야 했던 게 생생합니다.

  오래 기억을 떠올리면 약간 우울해지곤 합니다.

  선생님께서 애니타 다이아먼트라는 작가의 책 구절을 예전에 한번 적어 주셔서 정말로 제 인생이, 아이를 낳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헛되지는 않았다는 큰 위로가 되었었는데,

  다시 읽어 봐도 역시 큰 위로가 되는데요.

  별 볼 일 없는 제 인생에,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유일한 업적???

  아가 셋...

  지금은 올망졸망 크고 있느라 여러 가지로 부산스럽고 힘들고 그래서 좋은 일인 줄도 모르고 키우고 있어요.

  선생님처럼 명확하게 저를 위로해 준 분은 없어요.

  역시 제 선생님이세요. 칭찬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해 주셨으니까요.

  혹시 이 칭찬에 힘입어 넷째도 덜컥 낳게 되면, 그때는 어쩌시렵니까?^^

 

  …(중략)…

 

  오늘따라 유난히 교실이 덥고(올 여름 두 번째로 선풍기를 틀고 오후 수업 했어요. 아이들은 땀을 빠작빠작 흘리고 있구요.),

  장학 지도 받는 날이라 3교시에는 장학사님도 들어오시고,

  아침에는 청소하느라 혼 빼고, 어쨌든 오후 협의 끝나고 장학사님 돌아가실 때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겠죠.

  아이들 하교시키고 잠깐의 짬이라도 내서 선생님께 편지 쓰며

  주절주절 무슨 말이든 하다보면 정신이라도 차려지겠지 싶어서 쓰는 거예요.

  이 와중에 민방위 훈련 사이렌 울리고, 조용하던 라디오 클래식 코너에서 전시 상황 대피 훈련법 계속 왕왕 이야기하고...

  선생님.

  저 작렬하는 태양빛을 한없이 그리워하던 때가 불과 몇 주 전이었죠.

  이젠 또 너무 뜨거워서 헉헉대며 서늘한 때를 그리다니, 참 간사한 게 사람인가봐요.

  학교...

  학교...

  이곳에도 늘 간사하게 내가 바라던 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싸우는 것도, 개선하는 것도, 수긍하는 것도 아니면서

  비겁하게 적응해서 빌붙어 산다는 느낌을 강하게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사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처리로 바쁘게 살고 있으면서도

  박차고 나가지도 못하고 구시렁거리며 비겁하게 사는 저 말이에요.

  지금 에스퀴스 선생님의 [위대한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어쩜 제가 그 훌륭한 선생님과 딱 정반대로의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니....

  정말 아이들에게 죄악이 아닐 수 없어요.

  학교란...

  교사란...

  정말로 제게는 단지 직업일 뿐인 것으로 전락한 게 아닐까 싶어요.

  몇 년을 여기에 더 있게 될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선생님처럼 끝까지 가는 것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구요,

  이래저래 평가받아 퇴출되는 시나리오도 그려보고

  아니면 다른 뾰족한 길을 찾아서 일찌감치 명퇴하는 장면도 떠오르고,

  생활력 있게 투잡을 뛸 수 없을까 머리 굴려 보기도 합니다.

  오로지 이 한 곳에 나의 남은 모든 에너지를 올인하겠다는 생각은

  최근에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나쁜 사람이죠.

  어떻게 선생님은 한 곳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

  마침표를 딱 찍고,

  홀연히 그렇게 떠나실 수가 있으셨나요?

 

  …(중략)…

 

  저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요?

  도와주세요, 선생님.

  집에서는 서영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읽고 있는데,

  그렇게 홀연 산티아고로 순례를 떠나기라도 하면

  마음이 평정될까요?

  문학을 하던 사람이 문학을 접고 순례를 떠나고서야 비로소 가식 없는 책을 썼다면,

  교사도 교사를 접고 순례를 떠나고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교육을 하게 되는 걸까요?

  원래 머릿속이 복잡하기로는 누구 못지 않았던 제가,

  요즘은 엉킨 실타래 속 같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이렇게 부르는 것은 얼른 끝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겠죠.

  곧 협의회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럴 수가 없죠.

  사랑하는 나의 선생님.

  이 이메일은 순식간에 선생님께 전달될 것이므로,

  손편지보다는 정말 ‘앗싸리’하네요. 협의회 가기 전에

  선생님 폰에 메세지로 메일 보냈다는 문자 한 통이면 즉각 읽으시겠죠.

  하~~~

  저는 손편지 써서 보내놓고 한참을 잊어버린 듯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메일 쓰셨다는 문자 보고서야 메일 확인하면서

  적어도 편지를 쓰고 보내고 기다리고 답장을 읽기까지 꽤 긴 시간을 기다렸답니다.

  그게 나쁘지 않았는데, 메일 쓰는 지금은 이게 순식간에 갈 거니까,

  선생님도 얼른 읽으시라고 문자 보낼 테고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이뤄지겠군요.

  ㅠㅠ

  오랍니다.

  그래서 저는 가야합니다.

  블로그에 들러보니 병원 다녀오셨다구요. 마음이 짠해요.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TV에서나 보는 큰 병원 안 가셔도 될 만큼 스스로 건강을 찾으시면 좋겠어요.

  EBS의 명의 프로그램 자주 보는데요,

  선생님께서 그런 명의들 계시는 큰 병원 안 가셔도 될 만큼 저절로 건강해지시면 좋겠어요.

  저의 사랑을 보내드리면 조금 좋아지시지 않을까요?^^

  잘 챙겨 드시고(음식이든 약이든), 아프지 마세요.

  이젠 진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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