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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의 손편지

by 답설재 2010. 5. 18.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았습니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옮겨놓기로 했습니다.

 

 

선생님께

 

일요일 저녁 8시 37분.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 오후에 ○○대 잔디밭에서 내내 공을 차고 논 세 녀석은 버얼써 잠들었구요, 아이들 아빠도 출근을 위해 ◎◎으로 들어가고, 좀 이른 저녁시간이지만 대충 정리하고 방 한 켠 앉은뱅이책상에 앉는 행복한 순간이 왔습니다. 놀토가 더 피곤합니다, 저에게는.

금요일, 수목원에서 전화를 받던 그 순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각해보곤 하면서, 문득 감정의 새싹이 돋듯 약간 간질거리면서 가슴이 충만해져오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선생님께서 여유가 생기시고 좀 자유로워지시니까 표현도 매우 free하시구나.’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던데요.

선생님. 메일보다 손편지가 훨씬 제게 맞답니다. 조금의 짬만 생기면 편지지 챙기고, 그닥 비싸진 않지만 정이 든 만년필 챙기고 앉아 미리 마구 행복해하면서 편지글을 쓰는 것이 제게는 밥 먹는 것만큼 익숙하니까요. 하지만 이메일보다는 글의 내용을 스스로 좀더 필터링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매번 하고 싶은 말을 노골적으로 다 써서야 되겠나 싶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있어요.

선생님은 또 계신 자리를 바꾸어서 교육을 바라보시며, 선생님의 역할에 충실하신데, 저는 변화도 없으면서 그저 눈앞에 닥친 일만 겨우 해치우며(기안1-결재1-현장학습 무사고-시상결재1-5월 수업공개 지도안 결재-운동회-사이사이 연수 2개……). 5월말까지는 숨 막히는 듯한 일정만 앞두고 한숨 폭폭! 동료교사들과 이야기 나누어보면 자괴감, 자격지심, 열등의식, 학급운영이나 아이들 지도에 대한 번뇌, 가정과 학교일 양쪽 모두에 대한 부담감 만땅. 서로의 얼굴이 측은해 보이고, 상대의 처진 어깨가 곧 본인의 어깨라 여기며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고 있다니까요.

심할 때는 모두 다 궁지에 몰린 쥐 같아요. 더 이상 내디딜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절박감 같은 게 느껴져서 입맛이 쓸 정도예요. 일본 아키타 현의 교육개혁을 담은 다큐 속 행복교사, 행복교육청, 행복학부모의 모습을 보며, 저건 또 어느 별의 외계어인가 하며 저 자신을 자조적으로 바라보게도 되네요.

선생님. 이렇든 저렇든 다 인간 사는 일이고 딱 기본만은 지키고 싶은데 길이 안 보여요. 선생님은 아시잖아요. 전 선생님을 길잡이로 철저히 이용할 거예요. 두고 보세요.

 

                                                                                                                         2010年 4月 25日 ☆☆ 드림.

 

 

                                          

 

 

 

 

 

 

아직 답장을 못했습니다.

가벼운 혹은 무거운 다른 얘기야 하면 되지만, 그 ‘길’ 때문입니다. 그게 어디…… 내 길이 이러니까요. ……. '길'은커녕 "선생님은 또 계신 자리를 바꾸어서 교육을 바라보시며 선생님의 역할에 충실하신데"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자리를 바꾸어서"도 걸리고, "교육을 바라본다"는 것도 걸리고,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도 걸립니다. 내 사정을 다 아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답장 못하고 있는 것, 이해해 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