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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요즘 학교는 어떻습니까?

by 답설재 2010. 4. 25.

"퇴임을 하니까 편하시죠?"
"아니요. 학교가 그리워요. ……. 요즘 어떻게 지내요?"
"짐작하시잖아요. ……. 교사들 중에는 요즘 학교가 미쳤다고도 해요."
"설마……. 그건 과격한 표현이죠. 불만은 언제나 있어왔잖아요. 불만이 없는 사회는 있을 수도 없고……."
"……. 어쨌든 그래요."

 

학교에서 마음 편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를 기원합니다. 교장이나 교사들이나 가르치는 쪽의 마음이 편해야 아이들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세금으로 마련된 봉급을 41년간이나 받은 '학교'입니다.
이런 편지는 어떻습니까?
이 정도는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위로를 해주거나 "이렇게 저렇게 해보시지 그래요?" 하며 주제넘은 자문도 해주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하며 옮깁니다.

 

 

# A 선생님의 편지

 

개나리, 목련이 활짝피었습니다.

봄은 오네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일주일이 하루같이 흘렀습니다. 교육과정 자율화로 시수 통합하고 교과 강화 모형 만들고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을 통합해서 짜고 이러고 저러고 하라더니, 매일 인터넷·휴대폰 사용 교육과 관련 설문조사, 학교폭력 설문조사, 성, 환경 등의 교육으로 시간들을 빼랍니다.

이런 내용이야 교육과정 편성 때 넣어 놓았으므로 학년·학급마다 다루게 될 시기와 내용이 다 다른데 이렇게 아무때나 막무가내로 (공문이 내려왔다는 거죠) 방송으로 듣는 일제식 강의 및 동영상, 게다가 설문 후 그 통계들은 담임 몫이고 학년부장은 수합과 학년통계로 본연의 임무가 무언지 생각할 틈도 없습니다. 이럴 거면 괜히 교육과정 짜느라 힘만 들었습니다. 재량활동을 무엇으로 할까 괜히 고민했습니다.

학교가 크니까 일이 세분되어 그냥 지나갈 일도 지나가지 못합니다. 교육청 외의 각종 기관에서 실시하는 글짓기, 그리기 대회도 강력하게 추진합니다. 어느 것 하나 해서 나쁜 것이야 있겠습니까만 담당 교사의 욕심 때문에 담임들은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입니다. '집중과 선택' 왜 이리 이 말이 간절하게 다가오는지요.

 

 

# B 선생님의 편지

 

내내 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춥더니 이제 쪼끔 풀린 거 같죠? ^^

그동안 힘들었어요 ㅎㅎ……. ○○ 일도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시험 기간이니 문제 만드는 것도 당연하고, 담임이니 수업공개 준비하는 것도 당연한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까 다 당연히 해야할 일들인데, 정신 못 차렸던 거 같아요.

몸이 아주 힘들어서 구역질을 하다가 -_-

○○ 일도 대충 끝내고,

문제도 만들어 놓고

이제 수업공개만 남겨놓으니까 여유가 좀 생겼어요.

독감 때문에 일을 못하다가 일이 겹치고 몰려서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B형 독감 -_-? 뭐 그런게 유행한다는데…… 3월에 목감기 걸렸을 땐 그냥 잘 넘겼는데 독감은 진짜 진짜 진짜 진짜 독했어요. 교장선생님도 진~~짜 감기 조심하세요. ㅡㅜ

 

 

# 어느 장학사의 편지

 

요즘 담임장학을 나가서 현장을 보면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암담하고, 교육과정 자율화, 시험 성적 올리기, 각종 회의 참석 등등에 힘겨워하는 교사들 보면 교육청에 근무하는 자신이 죄인 같고, 장학사로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었습니다. 쓸데없이 밀려닥치는 업무로 단 1분도 숨돌릴 새가 없었기도 했구요.

교과부가 지난해 국가수준 성취도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각 학교를 한 줄로 세우니 꼴찌 하게 된 우리 지역은 여기저기에서 날아오는 돌팔매질과 위로부터 내려오는 화살이 만만치 않습니다. 각종 회의 때마다 '학력향상'을 외쳐대니 학교에 나가보면 오는 7월에 있을 6학년 성취도평가에 목숨 걸고 6학년에 올인하고 있는 실정을 보며 할 말을 잃어 버립니다. 6학년에 올인하는 것은 일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방법이 숨막히게 합니다. 무조건 시험문제 많이 풀게 해서 성적을 올려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7월까지 6학년 아이들은 얼마나 불행해야 할지, 그리고 교육과정은 얼마나 파행적으로 운영하게 될지 뻔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했다간 그 학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우리 학교 꼴찌하면 네가 책임지겠냐?"고 야단 맞을 것 같고, 야단 맞는 건 괜찮으나 그 교장선생님이 저 윗분들한테 또 문책당할까 봐 아무 말도 못하겠습니다.

교육과정 자율화도, 대부분 학교가 성적을 올리기 위해 국어, 수학 시간을 순증하여 더 재미없게 만들어버린 현실을 보며 "부장님들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어 교문을 나서는 제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이건 아닌데…… 아이들은 학교에서 얼마나 불행할까?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런 저런 생각이 장학사로서 설 자리를 잃게 하고, 담임장학을 나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부대끼게 합니다.

창의성교육을 해야 한다면서 국가적으로 치루는 시험에서는 한줄 세우기를 하는 이 나라의 교육이 정녕 학교를 죽어가게 만들고 있고, 방향을 잡지 못하게 하여 아이들만 병들게 하고 있어 가슴 답답합니다.

때 아닌 눈이 많이 내립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럼, 어느 학부모가 신문에 투고한 글을 좀 보십시오. 이 내용은 우리에게 더 깊은 생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 어느 독자 투고(문화일보, 2010년 4월 19일, 30면, 오정환, 서울 동대문구)

 

아이를 셋 키우는 우리집은 얼마 전에 결국 적금을 깼다. 특목고 입학을 원하는 아이 학원비와 입학사정관제 대비 컨설팅 비용 등 이것저것 상당히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도리가 없었다.

정부에서는 번번이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지만 이 말을 믿는 학부모와 학생은 없다. 그 이유는 공교육의 현장에서 교사들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력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후략)…

 

 

학교가 미치다니요.

도대체 왜 그런 말이 나오도록 둡니까?

교장선생님은 무엇에 관심을 두고 거기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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