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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RE: RE: 빗꾸리시마시다

by 답설재 2010. 3. 16.

뭐 이런 제목이 있나, 싶을 수밖에 없겠네요.

요전에 소개한 편지「오겡끼데스까?(건강은 어떻습니까?)」의 후속편입니다. 내가「오겡끼데스까?」라는 이메일을 받고, 처음에는 '아, 요즘은 남의 이메일 창고에서 발신자 아이디까지 해킹해서 스팸메일을 보내는구나.' 했다가 진짜로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보낸 걸 확인하고는 ''어? 웬 일본어?' 했으므로 답장 제목을「'빗꾸리시마시다(깜짝 놀랐습니다)」라고 했더니 상대방이 -이 편지 주인공이- 너무 우스웠다고 하며 보시는 바와 같이「RE: RE: 빗꾸리시마시다」라는 제목으로 답신을 해왔습니다.

내 이야기를 자꾸 들었기 때문인지 - 내가 지금 건방진 생각, 말하자면 착각을 하는 걸까요? - 함께 생활하지 않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을 망쳐놓은 건가요?

 

 

 

 

 

 

 

 

RE: RE: 빗꾸리시마시다

 

 

둘째 녀석이 두유 하나 먹고, 짜요짜요 3개 먹고

어째 낫게 먹는다 싶더니, 오줌 누이지 않은 엄마에게

한 방 먹였습니다. 쌌네요.

새벽 2시 넘어 아이 옷 갈아입히고 이불 치우고 난리블루스 추고 나니까 잠이 싹 달아나 <블루레터> 갔다가, 메일 읽었다가 하면서

더 난리블루스를 추고 있습니다.

까짓것 이렇게 또 한 번 밤 새는 거죠, 뭐.

 

선생님.

그곳은 즐겁고 신나는 곳인가요?

적어도 학교는 아니니까….

(흐음…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군요.

우리에게 학교는 숨통 죄는 곳이지만, 선생님께 학교란 그야말로 『사랑의 학교』였을 텐데, 제가 마치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느낌을 가진 그저 그런 교사처럼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그냥, 또 다른 길을 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신기하고 부럽고 멋져 보여서 그렇답니다.

 

지난주 부친상을 당한 친구와 늦은 저녁 통화를 했답니다.

(○○ 지구 어느 학교 근무하지요)

육친을 잃은 지 아직 10여 일도 지나지 않은 녀석이 혼은 제대로 챙겨서 출근했나 싶어서 전화한 것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혼을 빼는 게 아니라

현재 계신 교장님 이하 학교 분들이 얘 혼을 뺀답니다.

학교폭력, 특수교육…… 7, 8개 업무를 던져놓고, 겨우 1학년 보내놓고 12시 40분쯤 양치하고 자리에 앉아 저녁 7시까지 꼬박 공문처리, 결재, 일, 일, 일을 한답니다. 헐~~~~~

자기를 행정실 직원으로 불러달라네요.

그래서 불러줬어요. 네가 행정실 직원 맞다고. ㅠㅠ

 

저는 오늘 학급 임원 어머니 세 분이 오셔서

1시간 40여 분(헉헉;;)을 이야기했네요.

착한 선생 콤플렉스 극복 못 해서 하하호호 웃으며 말하고 듣고 맞장구 쳐 주고 중간중간 본인 아이 교실 모습 살짝 브리핑해주는 센스 발휘하고……ㅠㅠ

그분들이 저를 바라보시는 눈빛이 유독 반짝거리는 것도

결국은 내 아이의 담임이기 때문이지, 저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닐 테고, 딱 1년만 좋은 유대 관계 맺으면 우리 아이에게 나쁠 것 없으니 선택의 여지 없이 동맹 맺는 것일 테고, 이것저것 해주고 싶어서 안달을 내시지만 해준 만큼 제게 요구하는 무엇도 있을 테고.

담화의 이면을 읽고 있으려니까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한 것인지 힘들었어요.

겉과 속이 같아야 편안할 텐데, 사랑으로 나누는 이야기라야

에너지를 얻을 텐데,

어째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네요.

 

허걱~

새벽 4시네요.

선생님은 잠드셨을까요, 무슨 꿈을 꾸실까?

 

^^ 재미있네요.

이렇게 황당하게 혼자 있게 되어도

할 일이 있고, 메일 쓸 수 있고, 그리워할 수 있고,

생각이 깊어지는 새벽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니

꼭 뭔가 성공한 사람 같습니다.

 

ㅎㅎ 선생님, 저 오늘 성공했어요.

행복한 아침 맞으세요. 바이.

 

 

*빗꾸리시마시다... 너무 우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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