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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오겡끼데스까?

by 답설재 2010. 3. 11.

 

 

 

학교에서는 환영회나 취임식, 그런 이름으로 회식을 할 때이군요. 3월 둘째 주니까요. 좋겠습니다. "얼른 해치워야 이레저레 좋다"며 지난주에 이미 '해치운' 학교도 있겠지요.

회식 하는 날, 교장(아래 편지에서는 '대빵')은 몇 차까지 따라가는 게 좋습니까? 나는 꼭 1차만이었는데, 처음에는 몇 차례 2차까지만 가자고 졸랐습니다.

"교장이 따라가면 싫어한다면서요?"

"교장선생님 같으면 괜찮아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아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곧 조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2차의 프로그램은 주로 어떤 겁니까? 노래방? 차 한 잔? 맥주로 입가심? 어떤 거라도 좋겠지요. 그곳에서 떨어져나갈 사람 떨어져나가고 3차까지 갈 '핵심인사들'이 구분되는 게 중요하니까요.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고, 말도 마세요. 그 교장은 꼭 3차까지 따라다닌다니까요? 인사조로 '교장선생님이 가셔야죠! 그래야 재미있지요' 하는 걸 정말인 줄 안다니까요. 지겨워요. 회식하는 날이 돌아올까봐 두려운데, 교장은 회식을 왜 그리 즐기는지, 걸핏하면 회식하지 않는지 묻고, 노래방에 가서 '앵콜!' 하면 정말로 몇 곡씩 부르고, 아유~ 정말 지겨워서……."

'아, 바로 이런 거구나.'

별 수 없습니다. 늙으면 드디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신없는 놈들!"이라며 젊은이들을 나무라지만, 젊을 때는 정신차리지 않아도 좋은 거 아닐까요?(이나저나 이 블로그에 늙은이들은 잘 오지도 않을 텐데…….)

편지 한 통을 소개합니다. '오겡끼데스까?' 그는 나와 나이 차는 제법이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그래도 참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미 '빗꾸리시마시다'라는 제목으로 답장을 하긴 했지만(그가 '오겡끼데스까?'라는 메일을 보냈을 때 처음에는 '아, 요즘은 남의 이메일 창고에서 발신자 아이디까지 해킹해서 스팸메일을 보내는구나' 했고, 진짜로 그가 보낸 걸 확인하고는 '어? 웬 일본어?' 했으므로 '빗꾸리시마시다'라고 한 거지요), 아직 대답하지 못한 부분이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회식 이야기가 실감이 나서 학교의 회식 문화를 그리워하며 소개합니다. 보십시오. 그의 글은 표현이 적절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맛이 있습니다. 이만큼 쓰기는 실제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겡끼데스까?

 

 

우리말로 선생님 지금 평안하신지 여쭙는 것보다

일본어로 여쭈어보면, 더 많은 말을 내포하는 것 같은…… 제 느낌일뿐일까요.

한때 일본어를 열공하던 시절, 전생에 모국이 일본이라고 지껄이고 다녔답니다.

하지만 일본어가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 때 하다 만 공부를 언젠가는 꼭 다시 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답니다. 실현될지, 불발의 꿈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요.

 

선생님, 의사님들의 주문은 끝이 없을테고 그렇더라도 선생님께 맞는 처방을 스스로 내리셔야 할텐데 몸은 잘 돌보고 계신 게 맞는지요?

택시 자주 이용하신다는 얘기 들으니, 컨디션 조절을 하시는 듯하여 다행입니다만, 더욱 더욱 조심하셔요.

아파보시니, 선생님 몸이 정말 선생님의 것만은 아니란 걸 아셨죠?

건강할 때는 정말 몰랐는데, 아파보면 내 몸 하나에 참 여러 사람이 달려 있다는 걸 실감한답니다.

그러니 다시 탈나지 않으시게 관리 잘 하세요.

 

오늘 환영회 회식을 하고 왔습니다.

ㅎㅎ 올해 영입된 신입교사들의 물이 완전 달라서 회식 분위기가 작년과는 다르게 정

~

말 잘 놀더군요. 많이 웃고 많이 보고 많이 즐기고 왔습니다.

학교 내에서 우리가 느끼고 상처입었던 일들이 마치 없었던 일인듯이, 아니 앞으로는 쌍방간에 스트레스 주고 받을 일을 전혀 안 할 사람들처럼 우호적으로, 사랑스럽게, 즐기며 놀더군요. 심지어 대빵마저도 오늘은 약간 오버를 하시면서 쎄게 노시던데요.

그래도 9시를 넘기니 아줌아 샘들은 도저히 더는 못 버티고, "쫌상"으로 여기겠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빠져나왔답니다.

 

음주가무가 썩 내키지 않는 체질이라 그런지 비용을 치뤄가며 ○○구의 어느 호텔을 전세 내어 놀았는데도 가슴은 휑하니 비어 있네요.

 

◇◇에 파견 가 있을 때, 마음 맞는 두 부부가 아가들 데리고 어느 다리 밑에 돌 괴고 고기 구워 먹고 술 한 잔 하던 그 날의 만끽감이 훨씬 나아서 향수병처럼 생각나던데요.

 

샘, 저는 마흔두살이 되었습니다. ㅠㅠ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아줌마인데다가, 그런 곳에서 웨이브 추며 놀 수도 없는데다가, 현실의 자리에서 제 역할도 도무지 어중간하여 , 학교 어느 한 구석 표시나지 않는 곳을 땜빵해 놓은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사람인 듯합니다.

 

보직 업무 맡은 사람들이나 학년 부장처럼 일을 치뤄내는 사람도 아니고,

각종 대회나 보고서를 쓸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자기 특기가 있어서 아이들을 특별 지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침이니 학교 가고, 4 시가 넘으니 퇴근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지……

 

문득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 받고

훌륭한 선생으로 탈바꿈하고 싶은데,

선생님께서 받아주시기도 곤란할 정도의

사람인 것은 아닌지 의문이구요.

 

교직을 금새 떠날 게 아닌 이상, 뭔가 지향점이 있어야 할 듯한데, 자격증이 있어 교사라는 것 이외에 제가 뭣 때문에 교사일 수 있는지 의문이구요.

 

어디를 바라보고 또 무엇을 하면 좋을지……

17 년차에 아직도 이러고 있으면서,

감히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경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길을 나타내어 보여 주세요.

아니지. 길은 이미 선생님께서 몸소 걸어가신 교직의 발걸음으로도 충분하지만, 제가 따라가기엔 너무 벅차고……

제게 딱 맞는 맞춤형 길은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고민하는 걸로 치면, 제가 좀 합니다.

그러나 해답을 찾지는 못하는…….

언제나 명쾌하신 나의 선생님,

언제쯤 얼굴을 가까이서 뵙고 ,

"선생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쭈어 볼 수 있을런지요.

 

바뀐 3학년 교과서 뒷면에는 선생님 이름이 없어요.

섭섭해서 모든 과목들의 뒷면을 다 들춰봅니다.

곧 선생님 성함이 반듯하게 적힌 책을 볼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건강, 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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