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편지는 가볍게 여겼습니다. 담임교사가 편지쓰기 공부를 시킬 때 '교장에게 써볼까?' 생각한 아이들 몇 명이 쓴, 그래서 대부분 핵심도 없는 그저 그런 인사편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엔 자신이 결혼할 때 주례를 봐 달라는 내용도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써놓고도 잊을까요, 이 아이도? 일부러 잊은 척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봤더니 세상에는 이런 꾀죄죄한 사람이 아닌 '멋있는' 혹은 '고명한' 인물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결혼할 때 내게 주례를 봐달라고 했지? 언제 연락이 오려나?'
어느 좋은 날, 이 아이가 결혼할 줄도 모르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세월만 갈지도 모릅니다. 헛물만 켜며 늙어가겠지요. 하하하~
이 편지에는 그것 말고 내가 명심해야 할 사항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편지를 버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교장선생님!
선생님을 존경하는 양지초등학교 졸업생 ○○○입니다.
기온이 영하에서 머무는 추운 겨울방학이에요.
출장이 아니라 입원을 하셨다니…….
몸에서 연락을 받으셨나요? 위급한 상황이라고?
그것도 모른 채 학교에 가보고 '바쁘셔서 뵙지 못하는구나' 했죠.
선생님, 건강하셔야 해요. 입원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이제 다시는 못 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결혼할 때 주례를 봐 주실 거죠? 저는 그때까지 교장선생님을 잊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 저는 제 본분인 학생의 할일, 노력하여 꾸준히 향상되는 성실한 학생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교장선생님도 연세 생각하셔서 자주 웃으시고 꼭 금연하세요. 힘드시겠지만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내야 해요. 걷기 운동도 꾸준히! ^^ 아시겠죠? 그럼, 저 어른 되어서도 선생님 뵐 수 있겠죠.
관심과 사랑, 한없이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올해 제가 그린 백호의 기를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교장선생님의 제자
○○○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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