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쇠고 왔습니다.
선생님 메일을 지금에야 확인했는데,
선생님 뜻을 거스르지는 않은 설을 지내고 와서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잘 하지는 못하지만,
이래저래 서운하고 힘들고 속상한 것들…….
다 속에 묻고 입을 잠그고 약간 가식적이나마 웃음도 띄우며,
그렇게 가족들에게 필요한 사람 역할을 하고 왔습니다.
제 진심은 그다지 기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이니까 탁 깨놓고 말해서 말이에요.
나는 상대를 배려해서 사는데,
상대는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저를
우습게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예전 사촌들과 고샅길을 누비며 뛰어다니던
그 명절의 기분은 이미 잊혀진 지 오래입니다.
서글퍼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명절이란…….
나탈리 골드버그라는 사람이 쓴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오늘 문득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독감에 진저리치다가,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서
뭐라도 끼적거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스스 일어나서는
그만 선생님 블로그에 들르고, 이 메일을 쓰게 되었어요.
인간에 기대고, 또 그러다 실망하고 하는 일이
이토록 뼈저린 고독감과 상실감을 줄 수도 있는데
바보같이 왜 자꾸만 저는 그 사실을 잊는 걸까요.
공지영의『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고 했던 소설 제목은
아마도 저 보라고 붙인 게 아닐까요.
뜬금없지만,
선생님 퇴임식은 또 왜 안하셨어요?
선생님은 왜 무소의 뿔처럼 그렇게 혼자
가고 계신건가요?
아니,
선생님은 덜 고독할 수 있는
지름길을 알고 계셔서 그렇게 하신 건지도 모르지요.
저 NAVER 그림의 끝도 없는 길을 걷듯
이 초라한 길을 언제까지 걸어가 보면,
덜 고독한 순간이 올까요.
아니면 저라는 인간 자체가 고독 덩어리여서
하얀 뼛가루가 되어 날려가 버리기 전까지는
도무지 햇살 쬐여들 틈새조차 없는 게 제 인생일까요.
선생님.
일기장에 제 마음을
피토하여 뱉어내듯이 적어놓고서야
겨우 자신을 어루만지며 진정시키곤 하던 제가,
지금은 이렇게 선생님께
하소연 다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요.
공허하게 울려 퍼져나가는
혼자 울음이 아니라,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응석부리고 투정부릴 수 있다는 것,
제 인생에 일어난 몇 안 되는 기적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선생님께 속을 다 드러내놓을 수 있고 보니까,
새삼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정말로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 합니다.
오래 제 곁에 계셔 주세요, 부디.
선생님께서 미리 보내신 메일에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적으신 걸 보고,
왜 저만 그래야 하냐고
따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한 꾸중을 하셔도
잘 들을게요. 그렇게 노력할게요.
말씀 잘 들을게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만
보내주세요.
제가 평균 이하의 인간이 아니라는 위로를
해 주세요.
제가 그다지 나쁜 인간은 아니라는
선언을 해 주세요.
선생님, 제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세요.
제겐 선생님이 있어요.
<답장의 요지>
네가 아직 어리구나.
남들이 왜 너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니?
너는 지금까지 뭘 보고 읽고 생각하며 살아왔니? 겨우 그런 것이나 바라며 보고 읽고 생각하고 그랬니?
네 마음이 상했다면, 네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들과 네가 무엇이 다르겠니?
그런 생각을 하는 너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겠니?
그리고
사실은 나도 고독하단다.
덧붙이면,
날 잊고 싶거나 잊어야 하는 사람들은 '퇴임식'이라는 걸 하자고 했단다.
네가 나보다 어리다 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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