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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부총리님께 -다시 아산병원을 다녀와서 -

by 답설재 2010. 2. 12.

 

 

 

아침에 병원 창 너머로 내다본 한강 위로 오늘도 또 눈발이 날리더니 종일 오락가락했습니다. '강원 산간은 눈폭탄'이란 기사가 보이니 부총리님 계신 곳은 더하겠지요.

그 골짜기에서 괜찮으신지요? 지금 이 시각에도 눈이 내립니까?

 

택배회사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잘못 알려주어 연락이 왔었습니다. 혹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분이 부총리님"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해놓고는 뭔가 제 얄팍한 의도를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이제 '정말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결재를 받으며 지내던 그 시절, "요즘은 덜 피우는가? 냄새가 덜 난다." 하실 때마다 "예" 하고 대답하던 제 능청이 너무나 송구스러웠습니다. 그 이후 최근까지도 호기롭게, 때로는 심지어 '행복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워대면서도 전화나 이메일로 그걸 물어보실 때만은 참 답답하고 송구스러웠으며, '이러다가 혹 뵈옵는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나?' 그게 걱정스러워 고민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그 고민을, 지난 1월에 관상동맥이 막혀 수술을 하면서 '저절로' 해결한 것입니다. 담배를 피워대던 그 시간의 행복감을 생각하면 섭섭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더는 거짓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행복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몸이 고장나면 참으로 난처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인간을 기본적으로는 '품위있게' 다루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중환자실에서는 소변을 볼 수가 없게 되자 인위적으로(호스를 통해 강제적으로) 꺼내어주었는데, 얼마 후 다시 요의가 있다고 하자 "정말로 그런가?" 묻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 한 교장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도 운동강의는 그렇다 쳐도, 영양강의를 받고 나올 때는 '어린 학생에게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란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제 돈으로 병원 하나를 짓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가슴을 너무 오래 앓아온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부터 아프기 시작했지만 '설마, 설마' 하며 지냈고, 지난해에는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버티다가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심장수술을 마치 '일상적'인 것인 양 이야기하는데, 저는 수술 받은 지 한 달이 되었는데도 그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경사가 10도 정도만 되어도 아직은 50 미터를 걷기가 어렵고, 오늘 저녁에는 아내와 산책을 나서다가 어지러움에 진저리를 치며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병원에서는 "잘 만났다"는 듯 또 무슨 꼬투리를 잡을 것이므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총리님.

모처럼 연락을 드리면서 우스운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병원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라도 얼른 건강을 되찾아서 뵈오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기원합니다.

부총리님 모시고 도봉산에서 찍은 사진, 용인에 근무할 때 그곳까지 찾아오셔서 종일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시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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