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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어느 어머니의 작별편지Ⅰ-

by 답설재 2010. 2. 22.

어느 모임에서 '퇴임연'을 해준다기에 그 백화점 앞 한 식당에 갔다가 들어왔습니다.

 

교육경력 41년의 마지막 한 주일 중 월요일이 가고 있습니다. 그걸 아무도 심각하게 여겨주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무슨 글을 쓰자기도 그렇고, 무슨 생각을 깊이 해보기도 그렇고 참 어중간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받아둔 편지를 열어보았습니다. 이걸 소개하기가 쑥스러운 건 당연하지만, 이 '어중간한' 시간을 이 편지를 실어두는 것으로 메우려고 합니다.

 

편지를 소개하게 되었지만, 나는 이런 편지를 보면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나 누가 저를 '특별한 관점'을 가진 교장이라며 저에 대한 편지 같은 걸 좀 써주려니 했었습니다.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어중간하다'는 것은, 나로서는 허전하고 쓸쓸하다는 의미입니다.

 

 

 

교장선생님!

 

9월이면 만나뵙게 될 교장선생님!

이곳 양지에 오시면 양지어린이들 많이 사랑해주시고

더욱 발전하는 학교로 이끌어주세요.

언제나 뒤에서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2007. 8. 30.

 

이렇게 이메일로 인사를 드렸었는데…….

이제는 헤어짐의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교장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말고 그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요?

엄마이기에 민감했던 아이들의 선거, 발전기금, 간식문제 등등

너무나 소신있게 확실히 밝혀주심에

아이들의 소망과 엄마의 희망을 이룰 수 있었던 것 알고 계세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주신 분!

아이 하나하나가 소중했던 분!

두 아이를 키우며 세 분의 교장선생님을 떠나보내드렸지만

참으로 아쉬움이 가슴으로 느껴짐을 글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중학생이 된 ○○이 때문에 속상해서 글을 올렸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생각해보세요. 어머니가 어렸을 적에 엄마와 다투던 그때를 떠올리며 아이와 이야기하십시오."

지난 시절을 생각하니까 이런저런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내가 사는 동네도 잘 모르고 산다며 한 학년 아이들을 동네 아파트 앞 개천으로 내보내시고

뒷동산도 올라가게 하시고,

"우리 교장선생님, 정말 못말려~~."

엄마들은 많이 웃었습니다.

왜 웃었을까요?

저학년 엄마들은 예쁘게 도시락 준비해서 아이들 챙기는 구실로 함께 소풍가기를 기대하는데

그 엄마들이 집앞 개천 체험을 좋아할 순 없죠!

호호호.

울며 겨자먹기로 "투덜투덜"

물과 아이스크림을 준비해주는 모습을 보며 고학년 엄마들도 많이 웃었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올챙이, 피래미, 소금쟁이가 무엇인지 살펴보던 그 아이들이 커가면서

또 그런 추억을 만들어주실 그런 분이 그립습니다.

멋지고 근사한 학교이 모습이 아닌

애들이 살아있는 학교!

무작정이 아닌 제대로,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을 만들어주신 분!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신종 플루 때문에 걱정 근심하시며

수학여행을 못가는 서운함을 교내에서

'가상수학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손과 몸, 마음으로 실제 체험하게 해주신 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교장선생님!

당신의 말씀과 따스한 사랑 깊이 간직하여

당신의 제자 ○○, ◎◎

당당한 사람으로 키우겠습니다.

"추억을 가슴에 담고 새로운 시작을 향하여!"

졸업식장의 그 현수막 내용처럼

교장선생님도 새로운 길 걸어가시길 기원합니다.

블로그를 보면서 교장선생님의 정열적인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꾸벅')

교장선생님! 고맙습니다.

 

                                              2010년 2월 17일

 

                                                                                    ○○○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