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외손자 선중이 Ⅳ-고생이 극심할 담임선생님-

by 답설재 2010. 6. 17.

 

 

외손자 선중이 Ⅳ

- 고생이 극심할 담임선생님 -

 

 

 

지난 화요일은 제 외손자 선중이가 그애 친구에게서 이천원 짜리 치킨을 얻어먹은 날입니다. 그 친구가 다른 공부는 잘 해도 한자를 잘 못하기 때문에 제 외손자가 가르쳐주기로 하고 80점 이상을 받으면 치킨을 사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한자 시험에서 이번에도 제 외손자는 100점을 받았고, 그 친구도 90점이나 받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외손자는 보상받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지금 보시는 이 사진은 닌텐도를 하는 모습이므로, 당연히 그 당시 뭔가 보상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선중이가 2학년이던 지난해 여름에 쓴 한자. 그 애는 이렇게 매우 빨리 씁니다. 얼른 쓰고 놀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선중이 담임선생님께서 그 애에게 메일을 보냈답니다. 그 얘기를 전해듣는데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녀석이 담임선생님을 편하게 해드릴 리가 없습니다. 녀석은 제가 강의하는 소재의 하나인, 초등학교 과학 6학년 1학기 6단원 산소 발생 실험을 예로 든다면, 이 실험의 시작 단계에서 "가지달린 삼각플라스크에 이산화망간을 1g 정도 넣고 물을 부어 적신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당장 "왜 이산화망간을 넣느냐?", "왜 1g 정도를 넣느냐?", "왜 물을 부어 적시느냐?", 실험하는 걸 다 지켜보면 알게 될 것까지 시시콜콜 다 묻고 대답을 들어야 속이 시원할 녀석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전해듣기로는 담임선생님께서는 그 메일에서 녀석에게 이렇게 부탁하셨답니다.

"선중아, 친구들에게 고집부리지 않고, 성질내지 않으면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인천 부평 굴포초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더니 3학년 2반 담임선생님은 황기숙 선생님입니다. 얼마나 고심이 컸기에 녀석에게 메일을 다 보내셨겠습니까. 에디슨처럼 쫓겨나지 않은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낼 선생님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 퇴직해서 들어앉아 있는 신세이기 때문에 어디 전화를 해도 사람들이 잘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제 신세가 이렇지 않고, 최소한 아직 교장이거나 예전의 그때처럼 교육부에 근무하는 간부라면, 그 학교 교장선생님이나 황기숙 선생님께 아주 잠깐 전화라도 한번 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분은 "그래도 전화를 한번 해주면 좋아할 것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제는 제가 전화하는 걸 좋아할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