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는 2002 한·일 월드컵 때도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참 아니꼬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교수나 학자 등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그 '붉은악마군단'을 창설한 것처럼, 혹은 자신은 그런 문화가 창조될 것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회의장 분위기를 주름잡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나도 이번에 '붉은악마'들을 잘 봤지만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오죽 좋겠습니까. 그걸 그렇게 하지 않고 무슨 문화니 뭐니 하면서 그걸 현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자신이 '도사'기 때문에 벌써부터 이런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둥 어떻게 했다는 둥 온갖 폼을 다 재니 그 꼴이 얼마나 아니꼬왔겠습니까.
두고 보십시오. 그들은 이번에도 또 그렇게 할 준비를 하고 단단히 벼르고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그런 소리를 들을까봐 겁이 나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이야기하고 잘 난 체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뭐 하려고 잘 난 체하겠습니까.
붉은악마!
악마!
붉은.
그들이 악마(惡魔, devil, demon)입니까?
아니죠.
자기네들이 '악마'라고 하니까 악마는 악마지만 '붉은악마'지요.
멋지고
놀랍고
신선하고
아름답고
자신들이 절대로 악마같은 짓을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붉은악마 노릇'을 하니까 악마라는 걸 굳이 숨기지도 않고
숨기기는커녕 "내가 바로 그 악마요!" 하듯 온갖 악마 표시를 다한 채
"여기 악마가 있다!"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백주대낮이나 밤중이나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그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오히려 좋아하고
악마라는 것을 나타내는 온갖 치장을 다 하고 나타나는데도 겁내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겁내기는커녕 우리나라에 볼일 보러 잠깐만 와 있는 외국인들조차 "나도 그 악마 좀 하고 갈게요!" 하고 금방 물이 들어서 그 악마 패거리의 일원이 되고
가능하면 떼를 짓게 되고 떼를 지어 다니는 걸 좋아하고……
나도 '붉은악마'들이 참 좋습니다.
한 아파트에서 아래윗집에 살면서도 미소를 짓기는커녕
목례도 하지 않고
내가 목례라도 하면 겨우 받아놓고는 영 어색해하고
내가 그 집 아이를 귀여워하면 귀엽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면
'언젠가 유괴해갈 노인이 아닐까?'
그런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은 이 사회에서
우리의 저 붉은악마들이 마구마구 퍼져나가
아래윗집은 물론이고
옛날처럼 서로 정답게 살기 시작하면 참말로 좋겠다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언젠가 전철에서
내게 목례를 하고 윙크까지 한 그 서양여자에게
'별꼴이야, 정말! …… 저 여자 미쳤나?'
그런 눈초리로 쳐다봤던 게 후회스럽고 부끄럽습니다.
그리스 팀을 물리친 이튿날, 이런 사진이 실린 신문을 찾았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기자들도 비오는 밤에는 다 집에 가는가?'
'아니면, 사진 찍으러 나갔다가 카메라를 둘러멘 자신들도 악마로 변신하고 악마짓을 하느라고 쓸 만한 사진 한 장 찍지 못해 편집부장에게 혼만 나고 말았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불로그에는 좋은 사진이 참 많았습니다. 한 장 한 장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 가슴이 서늘해지기까지 하는 사진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렇게 너무 좋은 사진들이어서 양심상 도저히 캡쳐해 올 수가 없었습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이야 이미 지난 날짜의 신문이고, 어느 신문에서 가져왔다고 밝히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붉은악마!
그 악마들의 함성이 늘 들려오면 좋겠습니다.
악마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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